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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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환예치집중제

주제유형
정책/제도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군정법령」 제93, 1946.7

「대외무역거래 및 외환취급규칙」 대통령령 제132, 1949.6


배경

한국의 초기 외환관리제도는 1948 2월에 도입된 외국환예치증제도, 1950 6월에 전면적으로 입법화된 외국환예치집중제도, 그리고 1961 2월에 채택된 외국환매각집중제도의 3단계로 변천되었다.


해방 직후 한국 무역은 미군정의 엄격한 통제 하에서 물물교환이라는 원시적 방식에 의존하였고, 전반적인 외환부족 상태에서 사실상 외환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외국환 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으며, 고작 외환도피와 자본의 불법유입을 방지하기 위한 수출입 상품가격 심사제나 수입품 판매대금 예치제도 정도가 운영되었다. 그러던 중 1948 2월 조선환금은행의 설립과 더불어 민간 무역 및 무역외 거래에서 수취한 외국환에 대한 예치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외국환 예치자에게는 예치증명서를 발급하되, 그 범위는 수입대금 결제 목적으로 예입한 수출대금과 해외 유학생 여비용 예입 외국환 및 기타 재무장관의 허가로 예입한 외국환에 국한시켰다. 같은 해 10월에는 시중은행으로 하여금 외국인 명의 예금계정 설치시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함으로써 외국인의 국내 지급수단 취득과 거래를 규제하였고, 출입국자가 휴대하여 수출입하는 외국환과 귀금속에 대해서는 일시 보관 또는 몰수조치를 취하였다.


이러한 외국환예치증제도는 1949 6월 대통령령으로 공포된 「대외무역거래 및 외국환취급규칙」에 의거하여 ‘국내에서 외국환, 외국화폐, 외국증권을 소유·소지하거나 또는 관리하는 자는 이를 조선환금은행에 예입하거나 아니면 매각하여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외국환을 예치집중해 관리하는 방향으로 개편하였다. 이 외국환예치제도는 조선환금은행에 의해 실행되어 오다가 1950 6월 한국은행의 설립과 더불어 한국은행으로 그 업무가 이관되었다.


내용

정부는 불리한 가격조건에 의한 수출입이나 불법적인 외환거래 및 자본도피를 방지하기 위해 외환을 집중 관리하면서 사용을 통제하였다. 1946 7월 「군정법령」 제93호는 내국인의 외환사용을 금지하였고, 외환은 1947 6월에 설립된 조선환금은행에 의해 집중 관리되었다. 1948 2월에는 외국환예치증제도를 도입한 바 있으며, 1949 6월에는 대통령령 제132호로 공포된 「대외무역거래 및 외환취급규칙」에 의하여 외국화폐나 외국증권을 조선환금은행에 예입하도록 하는 외국환예치제도를 시행하였다.


이 외국환예치집중제도는 1950 6월 한국은행의 설립과 함께 입법화 과정을 통해 외국환을 소유자의 한국은행 계정에 예치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모든 외환은 한국은행을 통해서 예치집중방식에 의거하여 통제되었으며, 정부 외환계정을 제외한 모든 예치외환은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처분하게 되었다. 그 결과, 종래 미군정과 조선환금은행에 의해 이원적으로 실시되던 외환관리 업무가 한국은행으로 일원화되었고 대외결제 준비자산의 집중관리가 체계화됨으로써 한국의 외환관리 체제에 일대 전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다만, 한국은행에 의해 외환예치제가 운영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무역이 바터무역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 무역에 큰 의미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외국환예치집중제도 하에서 모든 외환취득자는 외환을 한국은행의 자기명의 계좌에 예치하거나 매각해야 하며, 수출로 획득한 외환은 수입대금으로 사용되거나 타인의 계정으로 이체가 가능하였다. 한국은행에 매각할 때에는 공정환율로 계산하지만 민간인 간의 외환거래에 해당하는 이체에는 프리미엄이 더해진 환율이 적용되었다. 물론 예치된 외환을 수입에 사용하더라도 취득원천에 따라 수입 가능한 것이 제한되어 있었으며, 대일 수입은 수지균형을 위해 대일 수출달러에 의해서만 가능하였다.


이 시기 외국에서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었던 외국환관리 방식은 매각집중 방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이를 도입하지 않고 예치집중 방식으로 결정했던 이유는 외환을 고정된 단일환율로 매각 집중하게 되면 국내통화의 대외가치가 급격히 변동하고 있었던 당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때문이었다고 보인다.또한 외환을 무조건 중앙은행에 매각해야 하는 외국환매각집중제도가 아니라 외국환예치제도를 실시한 것은 당시의 공정환율이 원화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외국환매각집중제도를 실시하면 수출유인이 감퇴할 수 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참고자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제정책 40년사》, 1986

한국개발원, 《한국경제 반세기 정책자료집》, 1995

한국무역협회, 《한국무역사》, 2006


집필자
이연호(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