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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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정책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한·미 우호통상 및 항해 조약, 1956.11.28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 정부간의 투자보장에 관한 협정」, 1960.2.19


배경

우리나라의 통상정책은 경제 및 무역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해방 후 전쟁을 겪으면서 대외원조 획득이 주된 목표였던 통상정책은 그 이후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뒷받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2000년대 중반 세계 11위의 경제대국, 12위의 무역대국으로 우리 경제의 위상이 높아진 데는 양자간 및 다자간 통상협력, 국제경제기구 가입, 개발도상국과의 통상협력 등 적극적인 통상정책이 기여한 바가 크다.


내용

1. 정부수립~1950년대

전후 경제부흥과 무역확대를 위한 세계적 협력기구로 1944 IMF(국제통화기금)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그리고 1948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가 탄생하였다. 또한 동서 냉전 격화로 미·소 양극으로 하는 전후 구호원조 및 개발원조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세계경제 조류 하에서 6.25 전쟁을 겪은 우리의 통상정책은 경제부흥을 위한 대외원조 획득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주로 미국과 UN 등의 국제기구에 의존했다. 우리나라는 1955년 IMF IBRD에 가입하여 한국경제를 세계경제와 연결하는 최소한의 통로를 마련하였다. 그러나미국 일변도의 협력관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양자간의 통상협정으로 1956년「한·미 우호통상 및 항해 조약」을 체결하는데 그쳤다.


2. 1960년대

1960년대에는 세계적인 무역자유화 분위기에 따라 무역방벽을 완화하기 위한 다자간 협상으로 케네디라운드(1964~1967)가 전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개도국들은 선진국의 개발협력과 파격적인 무역장벽 완화를 요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1964년UNCTAD(UN 무역개발회의)가 창설되었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한 수출주도 성장전략에 따라 통상정책의 기조도 GATT의 내국민대우와 최혜국대우(MFN)를 최대한 확보해 수출에 유리한 조건을 구축하는 데로 모아졌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60년 미국과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하고, 1965년에 UNCTAD, 1967년에GATT에 가입하는(1967) 등 통상협력을 위한 기본적 틀을 갖추었다. 또한, 케네디라운드에 참여하여 68개국으로부터 9 5,200개 품목에 대한 관세율 인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1950년대의 미국 일변도의 협력관계에서 탈피해 다변적 관계를 추구하고자 노력했는데, 1970년 말까지 21개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42개 국제기구에 가입하게 되었다.


3. 1970년대

이 시기에는 미국경제의 약화, 일본 및 EU(유럽연합)의 대두로 세계무역이 다원화되었고 도쿄라운드(1973~1979)가 개최되어 다자간 무역협상이 본격 전개되었다. 또한, 두 번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신보호무역주의가 시작되었으며, GATT를 주축으로 한 자유무역체제가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우리나라에서는 수출주도 성장전략이 본격적으로 성과를 나타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통상 외교도 더욱 적극성을 띠게 되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과는 공공차관도입, 기술도입과 함께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방지협정, 기술협력협정 등을 체결하여 경제협력의 기본 틀을 구축하려고 노력하였다. 한편,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을 계기로 자원통상 협력도 본격화되었으며 비적성 공산국가 및 비동맹그룹과 실리적인 통상외교를 펼쳐 대외협력의 대상을 넓혀 나갔다.


4. 1980년대

1980년대에는 신보호무역주의의 연장선에서 세계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수출입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여 다자간 무역체제가 점차 약화되었다. 이러한 보호주의의 확산을 저지하고 자유무역기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우루과이라운드(UR, 1987~1994)가 전개되었다.

신흥공업국 중 선두주자로 평가받은 우리나라에 대해 선진국은 개도국 졸업론(GSP [일반특혜관세] 수혜 배제, GATT 18조 적용 배제)과 함께 세계경제에 대한 국제적 책임을 제기하였다. 우리나라 수출상품에 대한 선진국의 수입규제가 강화되었고, 공산품과 일부 농산물 뿐 아니라 금융, 보험, 지재권, 통신, 정부조달 분야에 대해서도 시장개방 요구가 크게 확대되었다. 다자차원 협상(UR)에서도 관세, 비관세, 농산물 분야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시장접근 확대 요구가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대외무역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의 통상정책은 시장개방과 무역자유화를 기본으로 다자·양 차원 모두에서 협력기조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통상협력의 수단으로 무역실무회담, 통상장관회담 등 다양한 협의채널을 가동하였으며 정부 또는 민간 주관의 통상사절단과 시장개척단 파견을 크게 늘렸다.


5. 1990년대

1990년대에는 국제경제 질서에 큰 변화가 있었다. 우선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고1995년WTO 체제가 출범하였다. 한편, EU(유럽연합) 강화, 중국의 개방과 급부상, 일본의 경쟁력 우위, 미국 경쟁력의 상대적 약화, 냉전체제의 종식과 구소련 및 동구권의 시장경제 전환 등 세계경제의 다극화가 한층 더 심화되었다. 또한 자유무역주의를 표방하는 WTO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가 확산되었으며 공정무역을 명분으로 한 사실상의 보호무역 통상정책이 미국에 의해 주도되었다.

우리나라의 통상정책은 이러한 국제경제환경에 부응하고 경제의 세계화를 달성하기 위해 국내제도 개선과 시장개방 확대에 적극 임하였다. UR 협상에서는 공산품, 지적재산권, 반덤핑 등의 분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농산물, 서비스 분야에서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협상 타결에 기여하였다. 또한 1990년대에 UR타결과 WTO 가입,OECD 가입(1996), 외환위기(1997) 등 우리나라의 통상정책 기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들이 다수 있었다.


6. 2000년대

2000년대 들어서도 통상환경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WTO를 중심으로 자유무역이 세계무역의 조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무역 불균형을 이유로 개방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선진국·개도국 모두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반덤핑 등 무역구제 수단을 남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지역주의도 계속 심화되어 세계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지역무역협정(RTN)이 크게 늘고 있다. WTO 차원의 새로운 협상으로 도하라운드(DDA)가 시작되었다(2002.1).이 협상은 몇 차례 고비를 넘기며 진행되어 왔으나 결국 예정된 협상종료일(2006.12) 5개월 남겨놓은 시점(2006.7)에서 협상이 중단되었다. 도하라운드 협상에서 우리는 그 이전 라운드에서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주도적으로 대응하여 무역대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2000년대 들어 통상정책 방향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세계적인 FTA 확산의 와중에 고립되지 않기 위해 다수의 국가들과 동시다발적인 FTA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 또한 우리 경제와 무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는 국제적 책임분담 요구가 더욱 강해짐에 따라 공적개발원조(ODA)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지원 등 유·무상원조를 강화하여 개도국과의 협력적 통상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참고자료

상공부, 《무역진흥 40년》, 1988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제정책 40년사》, 1986

한국무역협회, 《한국무역사》, 2006


집필자
이연호(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