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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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부대(KSC)

주제유형
조직/기구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근무부대인 노무사단은6·25전쟁 기간 중 육군본부의 「노무사단 충원계획」에 의하여 편성된 준군사적 조직체였다. 이들 근무부대 대원들은 미제8군의 작전지휘 하에 주로 전쟁수행에 필요한 기술적 노무지원을 제공하였으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산악지역에 탄약과 식량을 지게로 지고 올라가 군을 지원한 ‘군번 없는 용사’들이었다. 이들은 1961년 10월 1일 개정된 「병역법(법률 제1163)」 부칙 제15조 규정에 의거 예비역에 편입되었다.


배경

전쟁기간 동안 노무자들은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유엔군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선에 탄약, 연료, 군자재, 식량, 식수, 보급품 등을 운반해 주었음은 물론 진지 공사와 전.부상자 후송 그밖에 도로와 교량의 보수 등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노무자들의 운반수단은 주로 지게였으며 당시 유엔군들은 지게가 영어 알파벳 ‘A'를 닮았다고 해서 그들을 ‘A Frame Army’(지게부대)라고 불렀다.


내용

유엔군은 전투 병력을 절감하고 전장에 보급품을 운반할 한국인 인력이 필요하였고 국군의 도움을 받아 근무부대 ‘한국노무단(KSC)’을 창설하였다. 한국노무단은 총 3개 사단 및 2개 여단으로 편성, 운용되었으며, 제2국민병을 주로 징집 동원하였으므로 준군사적 군단규모의 특수한 조직체로서 기능하였다.


휴전 때까지 유엔군에 의해 운용된 노무자의 숫자만 해도 노무단 노무자 9만 3천여 명, 직고용 노무자 7만 5천여 명, 계약고용 노무자 2만여 명, 해·공군 및 기타 기관의 노무자 약 1만 3천여 명에 이르렀으며, 이들 중 1951년~53년간 전선부대를 직접 지원한 노무자 가운데 확인된 희생자만도 총 8,794명이었다. 


이러한 노무자들의 전쟁 지원활동에 관하여, 당시 국군과 유엔군의 전투 지휘관들은 한결같이 “어떤 의미에서는 전투의 절반을 그들이 치렀다”라고 입을 모아 증언하고 있다. 노무자의 역할은 무엇보다 전투근무지원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군의 전투 병력이 행정이나 그밖에 근무지원에 투입되지 않고 전투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데 있다. 


노무자들은 군이 수행해야 할 다양한 행정이나 기술적인 부분을 분담하였으며, 또한 최전선에서 전투 병력이 담당해야 할 임무를 맡음으로써 병력을 최대한 절약하였다는 점도 역할 면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다. 실제 당시 참전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노무자의 운용으로 병력면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6.25전쟁 동안 노무자들은 비 전투요원으로서 작전상 필요로 하는 교량 및 도로의 보수와 식량, 탄약 및 군 장비의 운반 등에 동원되어 전투부대를 직접 지원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들의 활동에 관해 미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만인 한국노무단이 없었으면 미군은 최소한 10만 이상의 추가병력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노무사단에 근무하는 장병들은 병역법상의 현역도 아니고 예비역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질적으로 군에 복무하는 것과 다를바 없었다. 그리하여 1961년 10월 1일 개정된 병역법(법률 제1163) 부칙 제15조의 규정으로 “본법시행당시 노무사단 또는 노무단에 근무하였거나 근무 중인 장교 또는 하사관은 현역을 마치고 예비역에 편입된 자로 본다”고 규정하여 그들에 대한 예비역편입이 인정되기도 하였다.


참고자료

육군본부 <<후방전사>> 육군본부, 1953.
육군본부 <<육군발전사>>(상) 육군본부, 1970.
국방부 <<국방사>>제2집 국방부, 1987.
양영조 외 <<한국전쟁시 점령·동원·노무>> 국방군사연구소, 1995.


집필자
양영조(군사편찬연구소 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