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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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의 양성

주제유형
정책/제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법률 제41호:병역법 시행령」(’49. 8. 6)


배경

창군 초 사병 획득은 개인지원에 의하여 입대 조치하여 병력을 충원했었으나「법률 제41호: 병역법 시행령」(’49. 8. 6) 제정됨에 따라 국민개병제도를 실시하여 군의 병력소요를 충당했다.


6·25전쟁 당시 우리 군은 8개 사단 병력 80,000여명과 기술지원병과까지 포함하여 총 병력 103,00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군 조직의 급격한 확장과 병력소요의 급증으로 징집에 의한 병력충원이 불가능함에 따라 지원병 및 제2국민병 소집, 가두소집, 각종 단체의 집단소집,징집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병력을 획득해왔다. 휴전이후는 정상적인 징집에 의해서 병력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환원되었다.


내용

가. 국군의 신병양성
국군의 신병양성은 1955년 미 육군제도를 모방하여 병과 중심으로 분류하는 군사 특기별 사병 신청에 의한 병력보충제도의 형태를 채택했다. 1964년 신병훈련소 소산계획에 의거 제2군사령부 9개 교육사단 예하에 신병교육대를 설치하여 특과병을 양성해 왔다. 1975년에는 제30사단, 38사단, 51사단 신병교육대가 폐쇄되고, 제32사단 신병교육대가 증설되어 1981년까지 7개 소산훈련소를 운영했다.


나. 신병교육대의 해체
1973년 제3군사령부 창설에 따라 제2군사령부 예하 제30사단, 33사단은 제3군사령부로, 제38사단은 제1군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됨에 따라 신병교육대를 해체했다. 또한 제2군사령부 교육사단 신병교육대 축소로 기술행정병 양성을 보병요원 양성으로 전환하였으며, 제2훈련소는 기술행정병 요원만 양성하는 등 신병양성 체제를 변경했다.


다. 사단 직접양성제도
1979년 4월 1일부터는 전투환경 조기 적응력과 유사시 즉각 전력화에 대비하기 위하여 제2군사령부 교육사단에서 보병요원을 양성하여 전군에 보충하던 제도를 변경하여 제1․3군사령부 요원은 제102보충대(제1군사)와 제306보충대(제3군사)로 장정이 입소하여 제반 입소절차를 거쳐 각 사단에 직접 투입시키는 제도를 채택했다. 따라서 보병 및 야전포병 요원에 대해서 전방 각 사단의 지형 및 실정에 맞게 양성하여 유사시 즉각 전력화하는 체제로 전환했다.


라. 기술병 양성기관 지정
그밖에 군 장비의 현대화로 기술소지자의 수요증가와 사회기술 소지자를 군으로 연계하여 필요한 시기에 군기술병 소요를 충당하고 군복무기간 동안 개인 기술을 숙달하여 사회에 배출함으로써 국가적인 기술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1961년부터 기술행정병을 공개 모집하여 왔으나, 군기술병의 소요 충족에 차질이 초래되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기술병 양성기관(5개 학원)을 지정하여 민간학원에서 군 장비에 대한 기술교육자원을 각 군이 일부 충당하는 새로운 제도로 발전시켰다.


참고자료

국방군사연구소,《건군50년사》, 1996.
국방군사연구소,《국방정책변천사》, 1995.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국방편년사(1971~1975)》, 2001.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국방사》4, 2002.


집필자
백기인(원광대 군사학부 외래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