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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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 창설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병무행정의 중간통할기관으로서 병사구사령부를 해체하고 국방부 직속 하에 시·도급 특별행정기관으로「 병무청의 설치안」을 계획하여,「병무법 개정안」(1962.10.1 법률 제1163)에 반영시켜 1962년 10월 15일 시·도 병무청의 발족을 보게 되었다.


배경

병사구사령부는 지방 병무행정기구로서 당시 해체되는 육군 호국군 제기관의 편성인원을 기간요원으로 흡수하여 1949년 9월 1일 시도청소재지인 서울(경기 포함).춘천.청주.대전.전주.광주(제주 포함).대구.부산에 창설되었다. 


이는 제2국민병(현 제1국민역) 등록을 비롯한 징병제 실시에 필요한 제반 준비작업을 진행하던 10만 명 편제 제한과 군 예산 절감차원에서 1950년 3월 15일 일단 해체되었다. 6.25전쟁의 발발로 병원증강이 시급하게 되자, 우선 1950년 9월 20일 경남북지구병사구사령부, 1951년 4월 20일 전북지구병사구사령부 등을 재설치하였다.


내용

병사구사령부는 임무수행 상 충분한 체제도 갖추기 전에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하여 후퇴하게 되었고 1951년 봄 반격작전으로 남한 전역이 다시 탈환됨에 따라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였다. 병사구사령부는 사령관 아래 참모장을 두고 그 밑에 행정과.병무과.동원과.원호과 등 4과로 편성되었으며, 정원은 장교 12명, 사병 48명 합계 60명이었다. 


1953년 4월 1일 병무행정요원으로 문관 300명이 신규 채용되어 각지구병사구사령부에 배치되었으며, 전시근무동원법이 공포됨에 따라 1954년 3월 각 병사의 동원과를 병비과로 개편하는 동시에 민병과의 증설을 보게 되었다.


그 후 1955년 5월 5일 육편 12-5ROK로 병사인원이 87명으로 개편되었으며 민병대 해체에 따라 각 병사의 민병과도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1959년 11월 국방부병무국의 원호과가 폐지됨에 따라 병사구사령부의 원호과도 해체되었다.


따라서 병사구사령부는 1962년 10월 해체될 때까지 12년여의 장기간 이원적 병무행정체제하에서 빈번한 예속 변경 등 행정운영상 안정되지 못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국방상 절대적인 요건인 병력충원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병무행정은 전시.사변.기타 비상사태에 있어서는 물론 평시에 있어서도 병원동원 등 긴급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이원적 지휘체제에 의한 운영으로 난관들이 많았고 특히 군부대는 행정기관을 지도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하여 통할 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1962년 10월 15일 시.도 병무청이 발족되었다. 시·도 병무청은 그 시.도청 소재지에 위치하고 그 시·도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다만 경상남도병무청은 부산시에 위치하여 부산시와 경상남도 전역을 관할하였다. 그러나 1967년 10월 1일 부산시병무청이 신설되어 도합 11개 병무청이 되었다. 


시.도 병무청은 일반직공무원으로 편성함이 원칙이었으나 그 전신이 병사구사령부였으므로 당분간 군인의 배치도 허용하기로 하고, 1962년 11월 15일을 전후하여 초대 청장에 현역 육군대령으로 보하고 뒤이어 부청장에는 국방부 일반직 사무관중에서 선발하여 서기관으로 승진 발령하였다. 1965에 이르러 청장을 부이사관으로 대체하였으며 징모과장과 평직원도 1970년대 초까지 전원 일반직으로 교체하였다.


참고자료

국방군사연구소 <<건군50년사>> 서울인쇄, 1998.
국방부 <<국방관계법령집>>(1) 국방부, 1960.
병무청 <<병무행정사>>(상) 병무청, 1985.
국방군사연구소 <<국방정책변천사(1945〜1994)>> 신오성, 1995.


집필자
양영조(군사편찬연구소 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