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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환위기(IMF구제금융)

분야별 주제 및 주요내용 및 소개 테이블
주제유형 역사적사건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발생배경

우리나라는 1990년대자본자유화 및 금융자유화의 영향으로 자본수지는 대폭적인 흑자를 기록하였으나, 경상수지는 1991년 이후 계속 적자를 기록하였고 1996년 그 폭이 크게 늘어났다. 1997년에 접어들어서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기업의 부도가 잇달아 나타나고,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화, 외자도입의 부진 등으로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고 환율이 상승하는 등 국제수지 관리상 문제점이 증폭되고 있었다. 정부는 이에 대응하여 4월에 자본시장의 조기개방계획을 발표하고 이에 경상수지 적자 폭이 일시 감소하여 외환보유고가 일시 증가하였다. 그러나 그해 7월 태국의 바트화 폭락 등의 외환위기를 시발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가 금융위기에 빠지면서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불신도 높아지고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유출되었으며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입금 만기연장도 어려워지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외환사정이 11월에 급격히 악화되고 시장에서 환율이 급등하였으며 한국은행의 외화자금 지원이 불가피하게되었음과 동시에외환보유액이 급감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대외결제불능 이하 상태까지 발전가능한 외환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내용

1997년에 접어들어 경상수지 적자의 지속, 외자도입의 부진 등으로 외환시장에서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고 환율이 계속 상승하는 등 불안한 징조가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4월 자본시장계방계획을 발표하고 일시적으로 경상수지가 개선됨에 따라 상반기에 외환시장의 불안은 다소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반기 기아그룹의 부도처리가 지연되고 기업의 부도가 늘어났으며, 동남아시아의 금융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불신이 점차로 높아져 국내은행과 종합금융회사의 외화차입이 차질을 빗는 등 외환위기 징후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자 외국인 주식투자자금도 유입보다는 유출이 더 커지고 10월부터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많은 조치를 강구하였다. 정부는 외환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 전체의 불안에 대처하여 자본도입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자본시장 조기개방,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확대를 시행하고 채권발행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였으며, 금융기관의 대외채무에 대한 정부보증을 확대하였다.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에 대해 단기유동성을 지원하고, 금융기관의 외화부족에 대응하여 단기 외화자금을 지원하였으며, 유동성위기에 직면한 제일은행과 16개 종합금융회사에 대해 특별대출을 실시하였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노력과 상관없이 국제신용평가기관은 1997 10월 하순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추었으며, 홍콩 주가가 폭락함으로써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신뢰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10 28일에는 환율이 일중변동폭 상한인 2.25%까지 상승하여 30일까지 외환거래가 중단되었다. 국내은행과 종합금융회사의 외환결제자금의 조달이 불가능하자 한국은행은 11월부터 외환보유액을 이용한 긴급 외화자금을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10 29일과 31일에 금융시장안정대책과 후속조치를 발표하였으나 외환시장의 공급부족 상태는 지속되었고 환율의 상승기대로 인해 11 17일부터 연 4일간 일일변동 상한까지 상승하여 거래가 중단되는 등 외환시장 기능이 마비되고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감소하여 대외적인 결제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정부는 외환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11 19일에 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여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앞당기고 은행, 종합금융회사, 상호신용금고 등 금융기관 예금에 대하여 2000년말까지 원리금 전액을 정부가 보장하고 환율의 일일 변동폭을 2.25%에서 10%로 확대하여 사실상 자유변동환율제를 채택하였다. 정부는 11 21일에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여 IMF로부터 210억 달러 규모의 대기성차관협정을 체결하고, 연이어 세계은행과는 100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과는 40억 달러의 지원협정을 체결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국제금융기구의 도움만으로 외환위기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일본과 미국에 요청하여 총 233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정부는 총 583억 달러 지원을 약속받음으로써 국제적 신인을 회복하고 외환위기를 일단 수습하게 되었다.

역사적의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금융자유화를 가장 늦게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실시하였지만 당시의 경상수지의 대폭 적자, 국제수지 관리 미숙, 대기업 및 금융기관의 차입경영 및 부실화, 금융감독의 미비,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파급 등으로 인해 외환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아 국제적 신인을 회복하여 외환위기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습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IMF 지원을 매개로 IMF와 거시경제정책, 금융, 기업, 공공부문 등의 구조조정, 금융시장의 자유화를 강도 높게 추진함으로써 국내경제는 대외적으로 더욱 개방되는 동시에 부문별 간의 불균형 발전에 따른 양극화라는 새로운 문제를 안게 되었다.

참고자료

柳漢晟 ,《韓國財政史》 광교, 2002

韓國銀行,《韓國의 金融·經濟年表(1945~2000)》, 2000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외환제도와 외환시장》, 2007

한국은행 ,《韓國銀行 50年史》, 2000

집필자

배영목(충북대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