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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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도입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경

한 나라가 자본을 외국으로부터 도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차관과 외화채권발행 등 차입형태에 의한 외자도입, 외국인의 국내기업 주식 취득과 직접적인 국내사업 활동을 허용하는 외국인 직접투자, 기술사용료를 지급하는 방식에 의한 기술도입 등이 있다. 우리나라 경우에는 외자도입 유형을「외자도입법」의 적용을 받는 공공차관, 상업차관, 외국인 직접투자 및 기술도입을 비롯하여「외국환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금융기관의 은행차관 도입, 외화채권 발행 및 기타 해외차입과 기업의 외화채권 발행, 무역신용도입, 기타 해외차입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1962년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작한 이래 수출주도형 공업화정책을 근간으로 하여 전례없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였다. 이러한 고도성장에는 높은 투자율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높은 투자율은 높은 저축률의 뒷받침이 있어야 달성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내자동원을 위해 저축권장운동도 전개하였지만 동시에 외자도입의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우리나라는 외자를 도입함으로써 투자재원 부족이라는 경제성장 애로를 극복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외자도입이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정책, 통상정책, 산업정책 등과 연계하여 외자도입을 추진함으로써 외자도입은 경제성장, 수출증대, 산업구조의 고도화 등을 통해 외채상환능력의 증대를 가져와 중남미와 동유럽 국가들과 같은 심각한 외채위기를 초래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1980년대 경상수지 흑자국으로 전환될 때까지는 외채위기의 늪에 빠질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내용

우리나라가 무상 원조에서 유상으로 차관을 도입함으로써 외자도입이 시작된 것은 1959년 동양시멘트의 개발차관기금으로부터의 공공차관 도입부터이다. 본격적인 외자도입은 제1차경제개발계획이 시행되면서 시작되었고, 이 시기에 외자도입의 틀이 형성된다. 우리나라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행하면서 그 전제가 되는 투자재원의 확보를 위해 외자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60년에「 외자도입촉진법」이 제정되고, 1961년에는 외자도입운영방침이 수립되고, 1962년에는 차관에 대한 지급보증에 관한 법률, 장기결제방식에 의한 자본재도입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이 제정됨으로써 외자도입에 관한 기본법규가 마련되었다. 정부는 IBRD, IMF. IDA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공공차관의 도입기반을 조성하였다. 우리나라 정부는 1965년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통해 재정차관과 공공차관을 도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1966년에는 외자도입과 관련되는 기본법을「외자도입법」으로 일원화하고 이에 대한 규제 효과를 높였다. 그리고 정부는 상업차관 및 현금차관 억제 방침을 종합 보완하여 외자도입합리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1970년대에는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외국인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시도가 본격화되었다. 우리나라 정부는 중화학공업화, 지역간균형발전, 수출증대를 포함하는 경제개발계획은 막대한 투자재원을 필요로 하고 이를 위해 외자도입의 확대를 계속 추진하였다. 정부는 1973년 공공차관을 적기에 원활히 도입할 수 있도록 공공차관의 도입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한편「외자도입법」과 외자도입법시행령을 개정하여 외자의 납입지원, 인가조건의 불이행, 사업활동의 부진 등의 경우에 인가된 외자도입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여 외자의 효율적 이용을 도모하였고, 외자도입의 다변화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중동 붐에 힘입어 1977년 경상수지가 처음으로 흑자로 전환됨에 따라 외자도입의 확대보다는 관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그 방향을 전환하였다. 정부는 차관도입계약에 대한 사전신고제를 채택하고 사전조정을 강화하고 국내보유 외화에 기초하여 외화대출을 활성화시켰다. 1970년대 말 경상수지가 다시 악화되고 국제금리가 상승하여 이자지급이 급증하자 정부 단기상업차관에 규제도 완화하고 양질의 은행차관과 외화채권발행을 장려하였다.


1980년대 접어들어 정부가 정부주도형 경제운용방식에서 민간주도형 경제운용방식으로 경제운용방식을 전환하고 경제의 대외개방을 확대하기로 함에 따라 외자도입정책도 외자도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정부는 1983년「 외자도입법」,「 공공차관의 도입 및 관리에 관한 법률」,「외자관리법」을「외자도입법」으로 통합하여 각종 외자의 도입 및 사후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였고, 기술도입에 관한 절차를 개선하여 기술도입의 자유화를 시도하였다. 1984년에는 외자도입시행령을 개정하여 종래의 외국인투자 허용업종 열거방식을 제한업종 열거방식으로 전환하고 외국인 투자 허용비율을 철폐하는 등 외국인 투자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가 경상수지 흑자국이 됨에 따라 외자도입정책도 부족한 투자재원의 조달과 국제수지 적자 보전을 위한 외자도입에서 벗어나 개방압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책방향을 전환하였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업종을 계속 확대하고 1987년 제조업 업종은 전면 개방하고, 서비스업의 경우 투자한도를 확대하고, 1991년에「외자도입법」을 개정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한 부분적인 신고제를 도입하고, 1992년에는 외국인 투자를 신고제에서 인가제로 전환하였다. 1994년에 발표된 연차별 개방계획에 따라 외국인 투자를 신규로 개방하거나 외국인투자에 제한도 단계적으로 완화해 갔다. 정부는 1994년「외자도입법」을 개정하여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외국인투자를 국제적 규범에 일치시키고자 법률명도 외국인 투자 및 외자도입에 관한 법률로 변경하고 1997 2월부터 시행하였다. 이 법률에 의거 외국인 투자는 신고제로 단일화되고 5년 이상의 장기차관도 외국인 직접투자로 간주되어 자유화되었다.


우리나라가 1962년부터 1992년까지 도입한 외자를 유형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총도입액 801억 달러 중에서 상업차관이 210억 달러로 26.2%이고 공공차관이 194억 달러로 24.2%이고, 은행차관이 174억 달러로 21.7%, 금융기관의 외화채권발행이 91억 달러로 11.5%를 차지하고 있다. 그밖에 외국인 투자는 77억 달러로 9.7%, 기업외화채권 발행은 53억 달러 6.7%를 차지하고 있다. 각 시기별로 특징을 보면,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상업차관과 공공차관이 중심을 이루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은행차관과 금융기관의 외화채권 발행이 주도하였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는 외국인 투자가 크게 활성화되고 기업의 외화채권발행이 대폭 늘어나 외자도입 자체가 매우 다양해졌다.


집필자
배영목(충북대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