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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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관리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경

외국과의 상품거래, 서비스거래, 자본거래 등에 따른 자금결제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화폐가 아닌 미달러화, 유로화 등 외화로 결제된다. 상품을 외국에 수출하거나 용역 및 서비스를 제공하면 외환의 수입(受入), 반대의 경우 외환을 지급(支給)하게 되는데, 이러한 외환의 수입과 지급의 차를 국제수지라고 한다. 대부분 국가의 경우 외환보유액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제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통화 및 재정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수출을 늘이거나 수입을 줄이거나 또는 환율을 조정함으로서 수출과 수입을 변화시켜 국제수지를 조정하여 외환준비(대외준비금)가 적정한 수준에 이르도록 한다.


한 나라가 만성적으로 국제수지 적자국이 되면 대외준비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외환위기 또는 국제수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의 통화가치 폭락을 우려하여 자본이 외국으로 이탈하게 되고 그 나라는 극단적인 경우 대외준비금을 상실하여 경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도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로 외환부족에 늘 직면하였기 때문에 원조, 차관, 수출 등을 늘려 외환공급을 늘리는 한편, 각종 외환규제를 실시하여 외환수요를 줄여 최소한의 대외준비금을 유지하여 왔다.


우리나라는 외국에서의 지출, 외화자산의 보유, 해외 송금, 외국투자액에 각종 제한을 두거나 한도를 두었다. 우리나라가 1980년대 후반 경상수지 적자국으로 전환된 이후에야 단계적으로 외환규제를 완화시켰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직후인 1997년 국제수지 악화로 외환보유액이 39.4억 달러까지 줄어들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외환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2001년에 외환보유액이 1,000억 달러를 넘어서고, 한국이 IMF 차입금도 조기 상환하여 외환위기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켰다.


내용

1946 1월 우리나라 외환관리에 관한 법규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군정법령 제39호「대외무역규칙」이 제정되고 그 후 군정법령 제93호「외국과의 교역통제」가 제정되어 외국무역 및 우리나라 안에서의 외환거래는 물론 대외채권대외채무와 관련한 모든 거래에 대하여 엄격한 면허제가 실시되었다.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된 이후로도 군정법령 제93호를 대체할 법률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 법령은 계속 외환거래에 관한 기본적인 법규가 되었다. 당시의 조선은행과 조선식산은행이 절반씩 출자하여 조선환금은행을 설립하고, 이 은행이 유일한 외환업무 담당은행으로서 민간무역에 부수되는 외환업무를 취급하였다. 조선환금은행은 민간무역이 점차 활발해짐에 따라 1948 2월에 외국환예치증 제도를 채택하여 민간무역에서얻어진 외환의 예수업무를 시작하였으며 동 예치증서는 조선환금은행의 승인하에 수입업자에게 양도할 수 있게 하였다.


1948년 정부 수립이후, 동년 9 28일자로 한미간 환금에 관한 잠정협정을 체결하였다. 민간무역과 외환거래가 점차 활발해 짐에 따라 현실에 부합되는 외환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1949 6월 대통령령 제132호로 대외무역거래 및 외국환취급규칙을 제정·공포하였다. 이에 따르면, 대외무역에 의하여 취득한 외환은 조선환금은행에 매각하여야 하며 동 은행으로부터 외환을 매입할 수 있는 자는 상공부장관의 사전 수입허가를 받은 자나 재무부장관의 외환매입 허가를 받은 자로 국한하였다.


1950 5월 제정, 공포된 법률 제138호「한국은행법」의 시행을 계기로 조선환금은행은 창업후 3년 만에 폐쇄되고 한국은행이 일체의 외환업무를 승계하였다. 즉 한국은행은 정상적인 외환거래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대외결제준비금을 관리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 우리나라의 유일한 외국환은행으로서 일반 외환관련 업무도 담당하였다.


1차 경제개발계획의 시작과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수출증진 노력으로 수출업자의 외화획득이 늘어나면서 외환제도도 과거 외환지급을 중점적으로 관리하던 체제에서 외환의 획득과 사용에 대한 관리체제로 변경되었다. 종전 외환제도를 규율하던 군정법령, 대통령령, 한국은행법, 재무부령, 재무부 고시 및 금융통화위원회 규정 등 복잡다기한 법체계는 1961 12월에「외국환관리법」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일원적인 법체계로 통일되었다. 한국은행만 취급하였던 외환업무는 1962 4월에 5개 시중은행이 정부의 승인을 얻어 을종 외국환업무를 개시하였으며 1967 1월 특수법인인 한국외환은행이 설립되었다.


정부는 1973년 중동전을 계기로 촉발된 제1차 석유파동과 원자재가격 폭등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됨에 따라 외환제도 운영은 불요불급한 수입을 억제하고 외화자금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외국환은행의 외화예금 유치와 차관도입을 촉진하고 수출선수금 영수의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수입 억제를 위해 수입담보금 제도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외환규제 강화조치로 1974년 하반기 이후 1976년 초까지의 어려웠던 외환사정을 극복하였으며 1976년 하반기 이후에는 중동지역에 대한 해외건설 수주가 급격히 증가하고 세계의 경기회복에 따른 수출증대로 국제수지가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국제수지 개선과 세계적인 무역자유화 추세에 맞추어 수입자유화 조치를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하였으며 동시에 해외여행경비 지급한도를 늘리는 등 외환관리를 완화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접어들어외국투자전용회사를 통한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를 허용하여 국내 자본시장을 처음으로 개방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되어 해외로부터의 자금유입이 증가함에 따라 해외여행경비 등 경상적인 외환지급과 해외직접투자 등 자본거래와 관련된 외환의 유출에 대해 제한을 완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8 11월에는 경상지급에 대한 제한철폐 등의 의무를 규정한 IMF 8조국으로 이행하였다. 정부는 세계경제 질서의 변화와 금융의 범세계화 추세에 부응하여 선진국 등으로부터의 대외개방 요구를 수용하는 한편, 국내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외환 및 자본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92 1월에는 외국인이 국내 상장주식을 직접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또한 동년 9월에는 경상거래에 대한 규제를 종전의 원칙규제예외허용(positive system) 에서 원칙자유예외규제(negative system)로 개편하였다. 그리고 1994 12월에는 외환제도 개혁계획을 발표하고 1995 2월부터 해외예금 및 신용공여를 허용하였으며 1996 12월에는 OECD에 가입하였다.


1998 7월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를 완전 자유화하였다. 1998 6월에는 외환거래를 2단계에 걸쳐 전면 자유화하는 계획을 발표하고, 1998 9월 외환거래에 대한 사전규제보다 사후보고 및 건전성 감독위주의 사후관리에 중점을 둔 외환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새로이「외국환거래법」을 제정하여 1999 4월 기존의 「외국환관리법」을 폐지하고 이를 시행하였다.


1999 4월 「외국환거래법」의 시행과 함께 실시된 제1단계 자유화조치에서는 기업 및 금융기관의 대외영업활동과 관련된 대부분의 외환거래를 자유화하고, 자본거래에 대한 규제를 원칙규제예외허용체계(positive system)에서 원칙자유예외규제체계(negative system)로 개편하였다. 이와 함께 이러한 자유화 조치에 기인한 외환의 급격한 유출입 등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가변예치의무제도, 외환집중제 등의 안전장치를 운용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참고자료

김인준·이영섭, 《국제경제론》 다산출판사, 2005

韓國銀行, 《韓國의 金融·經濟年表(1945~2000)》, 2000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외환제도와 외환시장》, 2007

한국은행, 《韓國銀行 50年史》, 2000


집필자
배영목(충북대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