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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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연구소 설립

주제유형
사건/사고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발생원인

규장각은 조선시대 정조(正祖)가 즉위한 1776년 궁궐 내에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의 서화(書畵)·고명(顧命)·유교(遺敎)·선보(璿譜:王世譜)·보감(寶鑑) 등의 보관 및 관리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규장각은 단순히 역대 국왕의 어제·어필을 보관하는 일뿐만 아니라, 당시 왕권을 위태롭게 하던 척리(戚里)·환관(宦官) 들의 음모와 횡포를 누르고, 정치·경제·사회 등의 현실문제의 해결은 학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하여 1776년에 설립되었다. 그 이후 국가적 규모로 도서를 수집하고 보존 및 간행하기 위해 혼란기에도 그 명맥을 이어왔으며, 현재는 1947년 이후 서울대의 규장각도서관의 형태로 그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내용

1. 연혁
1776년 창덕궁 북원(北苑)에 규장각을 설치하여 장서 정리가 되기 시작하였고 1781년(정조 5)에 경서(經書)와 사적(史籍)을 인쇄·반포하던 교서관(校書館)을 외각(外閣)으로 편입시켰다. 이곳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의해 약탈된 곳이기도 하다. 


1863년에 흥선대원군이 집정하면서 규장각의 전통적인 기능인 역대 왕의 저술, 친필, 초상화, 선원보첩(璿源譜牒) 등을 보관하는 임무는 종친부에서 수행하고 규장각에서는 주로 도서의 관리 임무만 담당하게 되었다. 고종 5년(1868)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규장각의 기능도 대부분 경복궁에서 수행하게 되었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왕실의 권한과 기능이 축소되면서 규장각은 신설된 궁내부(宮內府)에 귀속되었다. 이듬해에는 규장원(奎章院)으로 개칭되어 궁내부 산하 6개 기관 중 하나로 격하되었다. 


1907년 11월 관제의 개정으로 규장각의 기능이 대폭 변경되었는데 본래의 기본 임무인 역대 왕의 유물과 저술을 보관하는 업무 이외에 종친부와 홍문관의 업무를 통괄 담당하게 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규장각은 폐지되고, 제실도서(帝室圖書)는 조선총독부 취조국에서 인수하고, 역대 왕의 어제, 어필, 선원보첩 등은 창경궁 내에 일본식 건물 봉모당(奉慕堂)과 보각(譜閣)을 지어 보관하고 이왕직(李王職)에서 관리하게 하였다. 1912년에는 제실도서를 참사관 분실(參事官 分室)에서 관리하게 되었고 도서의 명칭이 규장각도서로 바뀌었다. 1923년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된 후, 조선총독부는 규장각도서를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하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가 개교하면서 경성제국대학의 시설이 그대로 승계됨으로써 규장각도서도 규모나 보관 장소의 변경 없이 소관처의 이름만 서울대학교 부속도서관으로 바뀌었다.


2.소장내역
규장각의 도서는 1781년(정조 5)경에 정리되면서 총 3만 여 장서의 도서목록이 『규장총목(奎章總目)』으로 작성되었다. 규장각은 도서를 수집·보존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많은 책을 편찬하였다. 그 중에서 정조 때 편찬하기 시작한 편년체(編年體) 사서(史書)인 『일성록(日省錄)』은 한말(韓末)까지 계속되었다. 


규장각은 교서관(校書館)을 외각(外閣)으로 편입시켜 경서(經書)와 사적(史籍)을 인쇄·반포하였는데 1866년 발생한 병인양요(丙寅洋擾) 때에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외규장각 건물과 소장도서 5천여 책을 방화 파괴하면서 의궤(儀軌) 3백여 책을 약탈해 갔다. 그 책들이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어서, 수년 전부터 우리 정부가 프랑스 정부에 반환 교섭을 벌여 왔다.


개화사상의 맹아와 더불어 규장각 도서에 대한 관심이 증대됨에 따라 고종10년(1873)『文院書目(문원서목)』 등 규장각이 소장한 책들의 목록이 편찬 간행되었고, 개항 이후에는 상해(上海)에서 서양의 책들도 상당히 구입되어 규장각 부속 건물에 비치되었다. 


1907년 규장각의 주업무가 제실(帝室)의 문한(文翰)기록이 되면서 홍문관(弘文館), 시강원(侍講院), 집옥재(集玉齋), 춘추관(春秋館) 등에 소장되었던 책들과 지방의 사고(史庫)에 보관되었던 전적(典籍) 도합 10여 만 권이 규장각 도서로 통합되어 帝室圖書(제실도서)로 명명되었다. 이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이 규장각으로 이관되었다.


1908년 근대적인 직제(職制)를 편성하여 전모(典謀)·도서·기록·문서 등 4과가 사무를 집행하였으며, 이때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등 각 관서의 일기 및 등록과 정족(鼎足)·태백(太白)·오대(五臺)·적상(赤裳) 등의 사고(史庫) 장서까지 관할하였다. 1910년 국권상실로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던 도서는 한때 이왕직(李王職)에 도서실을 두어 보관하고 있었으나 1911년 조선총독부 취조국(取調局)으로 넘어갔다. 이때 넘어간 도서는 5,353부 10만 187책, 각종 기록은 1만 730책에 달하였다. 


1912년 총독부에 참사관실(參事官室)이 설치되어 이들 도서와 관련된 사무는 1923년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이 때 이관된 책이 총 161,561책이었으며, 그 중 일반 동양도서로 분류된 20,648책을 제외한 140,913책이 규장각도서로 지정되었다.


3. 출판·영인 사업
1950년대 후반부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규장각 소장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를 영인 출판 보급함으로써 국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러 규장각도서에 대한 본격적인 정리작업이 시작되었는데 1962년 5월에 서울대학교 부속중앙도서관 안에 규장각 도서위원회가 설치되었고, 1973년에는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일성록』, 『십칠사찬고금통요(十七史纂古今通要)』, 『송조표전총류(宋朝標牋總類)』 등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1978년 10월에 『규장각 한국본도서 해제-경,자부(經,子部)』 1권을 효시로 1987년까지 8권이 완성 출판되었다. 1981에는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 2권이 출판되었고, 이듬해는 중국본 종합목록도 출판하였다. 1977년에는 규장각 소장도서에 대한 해제나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논문집 『규장각』을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규장각이 본격적으로 소장 전적의 영인 보급 사업을 추진한 것은 1980년대 『일성록』이 선정되어 1982년부터 1996년까지 15년간에 총 86권으로 출판되었다.


참고자료
양진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문서 조사정리의 현황과 과제>《영남학》9 경북대 영남학연구원, 2006
김남기, <규장각소장 책판의 현황과 가치>《문헌과 해석》31 문헌과 해석사, 2005
규장각홈페이지(www.e-kyujanggak.snu.ac.kr)

집필자
류정아(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