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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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림구분조사

주제유형
사업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1911년 제정된 조선총독부의 「요존치예정임야선정표준에 관한 건」
1912년 제정된 조선총독부의 「삼림산야 및 미간지국유사유구분표준」
1915년 제정된 조선총독부의 「국유임야구분조사내규」및 「국유임야구분조사원심득」등


배경

산림소유권의 사정(査定)을 통한 등기제도의 도입으로까지 진행시키지 못한「삼림법」(1998)의 지적신고제도나 간략한 임적조사사업(1910)은 임야조사사업(1917~1924)의 예비조사에 해당할 뿐이었다. 이 두 사업으로는 국유와 사유의 구분이 불명확하였고, 더구나 시업안의 편성을 위해 요구되는 요존(要存)과 불요존(不要存) 국유림의 구분은 더더욱 불충분한 것이었다. 두 사업이 완료된 시점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토지조사사업과 함께 한국의 모든 토지에 대해 근대적 소유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산림에 대한 국유와 사유를 구분하고 소유권을 법인(法認)하는 임야조사사업을 시행하지 않고, 정확히 구분되지도 않은 국유림을 요존과 불요존으로 구분하는 국유임야구분조사사업(1911~1924)을 실시하였다. 총독부는 국유와 민유의 구분과 경계를 명확히 하고 국유임야 존치의 요존·불요존을 구분 결정하여 국유임야의 관리 및 경영의 기초를 수립함과 동시에 불요존임야에 대하여는 일반에게 개방할 목적으로 이 사업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조사사업은 법규에 근거하지 못하였고, <국유, 사유의 구분 → 요존,불요존의 구분> 의 순서가 아닌 역순으로 이루어진 근본적인 한계로 인하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배재수 외, 2001).


내용

국유임야구분조사업은 당시 국유림을 관리하는 소관부처에 따라 총독부 및 영림창의 주관 아래 시행되었다. 1911년 조사를 시작하여 임야조사사업이 시작되는 1917년 말까지 4,126천정보를 조사 완료하였다. 그러나 국유림의 요존,불요존을 구분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임야조사사업이 1917년에 실행됨에 따라 "연고 없는 국유임야" 에 한정하여, 이후 임야조사사업과 병행하여 실시하게 되었다. 


국유임야구분조사사업에서의 요존,불요존의 구분은 <표 1>의 구분 표준에 의해 수행되었다. 요존치 예정임야는 국토보안 및 산림경영상 국가소유로 보존할 필요가 있는 임야로서 존치를 요하는 정도가 높고 낮음에 따라 다시 갑종(甲種)과 을종(乙種)으로 구분되었다. 갑종 요존임야는 공용 또는 공익사업을 위한 일시적인 대부 외에는 일체의 처분을 금지하고, 을종 요존임야는 장차 존치할 필요가 없어지거나 특별히 해제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처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요존치 예정임야의 선정표준은 1)군사상, 2)학술상, 3)보안림, 4)봉산 등, 5)2,000정보 이상의 집단 임야, 6)기타 국유림 경영상 존치시킬 필요가 있는 임야 등이었다(조선산림회, 1935). 


불요존임야는 요존치 예정임야에 해당되지 않는 국유임야로 일반에게 개방하거나 민유로 이권처분이 가능한 임야로서, 일반에게 개방이 불가한 연고자가 있는 불요존임야(제2종)와 일반에게 개방이 가능한 연고자가 없는 불요존임야(제1종)로 구분되었다. 


연고(緣故)가 있는 제2종 불요존임야는 1)능원묘(陵園墓)와 기타 유적이 있는 임야, 2)고기(古記) 또는 역사의 증명에 따라 사찰과 연고가 있는 임야, 3)「삼림법」(1908)에 의하여 지적계를 제출하지 않아 국유림으로 귀속된 임야, 4)개간, 목축, 조림 또는 공작물의 설치 등을 위해 대부받은 임야(단기대부는 제외), 5)「삼림법」시행 전부터 합법적으로 점유한 임야 6)영년 금양의 사실이 명확한 임야 등이었다.


<표 1> 국유림구분조사에 의한 요존․불요존 국유임야의 구분 표준

종 류

구 분 표 준

요존치

예정임야

갑종

- 군사상 또는 학술상 필요 있는 개소

- 국토보안상 존칭할 필요 있는 개소

- 1사업구로서 경영하기에 충분한 약 2,000정보 이상 단지 개소, 기타 국유림 경영상에 이에 부속시키는 것이 편리하다고 인정되는 개소

을종

불요존임야

제1종

(무연고)

- 제2종 이외의 연고자가 없어 일반에게 개방이 가능한 임야

제2종

(연고)

- 종래 관습에 의해 삼림법 시행 전부터 점유하고, 계속하여 이를 금양한 것

- 기타 특별한 연고관계를 갖는 산림으로서, 그 연고관계로부터 대부매각 등의 처분방법으로, 일반에게 개방시키기 어려운 사정 하에 있는 것

자료: 조선총독부《朝鮮の林業》, 1929


이와 같은 국유임야구분조사사업의 최대 난제는 “수목을 금양하지 않았어도 종래 구역을 정해 영년 점유하여 시초채취 등으로 이용한 산림”을 요존국유림 또는 제1종 국유림과 구별하는 것이었다. 송계(松契) 또는 이동계(里洞契) 소유라는 확증이 없이 오랜 동안 관습적인 산림이용권이 적용되는 산림을 어떠한 기준으로 연고권을 인정하여 제2종 불요존국유림으로 구분할 것인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국유임야구분조사사업의 내규에는 명확한 구분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임야조사사업에서 연고자 스스로에게 신고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 사업은 산림소유권에 대한 정확한 사정이 없는 가운데, 서둘러 진행되어 국유림을 둘러싼 적지 않은 소유권분쟁을 야기하였다. 일제가 이처럼 이 사업을 서두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당시 일제의 한국 산림에 대한 정책기조가 경제성 있는 요존국유림의 조기 장악과 약 730만정보에 달하는 불요존림의 처분을 통해 일본 자본의 침투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국유 사유 소유권구분이 확실하지 않은 초기에 총독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국유림, 즉 총독부 소유산림을 대량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일제가 군사적(지정학적 위치 고려), 경제적 이유로 일찍부터 주목했던 지역은 압록강과 두만강유역이었다. 이 지역은 약 211만 정보의 우량한 천연림이 자생하는 한국 최대의 산림자원의 보고였고, 일제강점기 동안 계속하여 요존국유림으로 장악하였던 곳이다. 


이러한 구분조사의 목적으로부터 요존치 예정임야와 제1종 불요존임야의 구분에 중점을 두고 조사사업을 수행하였다. 요존치 예정임야는 대부분 우량한 천연림으로 구성된 자원이었기 때문에 총독부가 식민지 재정충당을 위해 직접 관리할 필요가 있었고, 제1종 불요존임야는 일본인 자본과 식민을 위해 직접 양여 또는 조림대부를 통한 양여의 수순으로 제공될 산림이었기 때문에 시급히 구분하고자한 것이었다. 그리고 제2종 불요존임야(연고림)로 구분된 산림은 산하주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이후 국유림에서 사유림으로 전환되는 소유권 변천과정을 밟게 되었다. 결국 이 사업 역시 일제의 총독부가 조기에 한국 산림을 장악하고자 성급히 시도한 식민지 산림정책의 소산 가운데 하나였다고 평가 할 수 있다(배재수 외, 2001).


참고자료

배재수 외,《한국의 근·현대 산림소유권 변천사》임업연구원, 2001

조선산림회,《조선임무제요》, 1935

조선총독부,《朝鮮の林業》, 1929


집필자
최인화(강원대 산림경영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