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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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림법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일제에 의해 1906년 2월 통감부의 설치 이후, 1908년 제정된「삼림법」(森林法)은 당시 증미황조(曾彌荒助: 소네 아라스케) 부통감의 지시사항


배경

「삼림법」은 일제에 의한 한국의 식민지 산림정책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산림소유구조를 재편하고 일본식 임정을 이식하는 등 근대적 임야제도의 도입 필요성에 따라 제정되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자본은 제일은행과 같은 금융자본을 선두로 하여 산업의 각 분야에 침투하고자 하였으나 일본인 재산을 보호할 법적장치가 미비하여 시급히 근대적 소유권을 근간으로 하는 법률의 제정이 필요하였다.「삼림법」역시 일본인 임업자본가들의 요구와 식민지 재정을 충당하고자 하는 일제의 요구를 반영한 법률이었다.


「삼림법」의 부분림제도(部分林制度) 설정은 일본인 자본의 침입을 합법화한 것이었고, 지적신고 조항은 대규모의 국유림 창출을 통한 재정수입과 산림수탈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일제는 당시 과거 조선왕조의 임정이 미비하여 산림이 황폐되었다고 하면서도,「삼림법」의 규정에 조림 및 녹화에 대한 조항이 미비 되었다는 점에서도 법제정의 의도를 알 수 있다(산림청, 1997).


경과

「삼림법」은 일제에 의한 통감부시기 특수한 정치사회적 상황 하에서 당시 대한제국에 초빙된 일본인 수석기사 도가충지(道家充之)에 의해 입안되어, 1908년 1월 24일 법률 제1호로 제정, 공포되었다. 


도가충지는 1906년 한국에 입국하여 통감부시기에 일본의 임정을 이식한 대표적인 산림기술자로서 한국에 모범림제도를 도입한 인물이다. 그는 1906년 9월경 부통감으로 부임한 증미황조의 허락을 받아, 일본의 구번제도(舊藩制度)를 모방한 부분림제도를 주요내용으로 하는「삼림법」을 입안하였다. 여기에서 부분림제도의 본질적인 성격은 일본자본의 한국산림으로의 침투였다. 그러나 부분림제도는 한국의 오랜 전통과 관습을 면밀히 살펴보지도 않고, 일본의 제도를 참고하여「삼림법」을 제정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었다. 


따라서 1908년 시행된「삼림법」은 한국의 상황을 무시한 일본식 산림정책의 이식으로 인해 별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이후 1911년 새로이 제정된 삼림령(森林令)에 의하여 폐기되었다(배재수 외, 2001).


내용

1908년에 제정된「삼림법」은 우리나라의 산림에 관한 전문적인 최초의 법률이다. 이 법에 수반하여, 같은 해 3월에 「국유림삼림산야부분림규칙」, 4월에「삼림법시행세칙」등 여러 가지 법령이 계속하여 제정되었다.


「삼림법」은 전문 18조, 부칙 4조, 총 22조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내용은 ①임야의 소유구분(제1조), ②국유산림산야의 처분규정(제2조), ③부분림제도(제3조~제4조), ④보안림제도(제5조~제9조), ⑤소유자에 대한 조림 및 보호의 명령제도(제10조), ⑥병해충 방제, 개간 금지, 분묘입장 금지, 화입 금지 등의 산림보호제도(제11조~제14조), ⑦형벌조항(제15조~제17조), ⑧지적신고제도(부칙 제19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삼림법」의 핵심은 부분림제도의 도입과 지적신고제도의 규정이었다. 특히 지적신고 조항은 한국의 산림소유구조의 재편을 강제하였다. 임야의 소유구분(제1조)에 의해 한국의 모든 산림은 제실림·국유림·공유림·사유림 등으로 나누어 소유권의 소재를 명확히 하였으며, 사유림 소유자에게는 본법 시행일로부터 3개년 이내에 지적을 계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당시 교통 및 통신망의 부족 등 여러 사정에 의해 지적을 신고하지 못한 산림이 대부분이었고, 이러한 산림은 모두 국유림에 편입되었다(배재수 외, 2001).


참고자료

배재수 외,《한국의 근·현대 산림소유권 변천사》임업연구원, 2001

산림청,《한국임정50년사》, 1997


집필자
최인화(강원대 산림경영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