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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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작조정령

주제유형
정책/제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조선소작조정령」

「조선부군도소작위원회규정」


배경

1920년대 소작문제가 점점 심각해지자 총독부는 1920년대 후반 소작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총독부는 소작문제 해결을 '철저하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입법이 필요하지만 이를 준비하는 데 있어 일의 성격상, 그리고 그 외의 사유로 신속하게 완벽을 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소작입법 대신 1928년 7월 26일 각 도지사에게 응급조치로서 「소작관행 개선에 관한 건」을 통첩하여 소작관행에 대해 행정지도를 명령하고 1929년 9월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소작관 제도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1930년 공황을 계기로 소작쟁의가 더욱 심해지고 농민층을 목표로 한 사회주의운동 또한 더욱 활발히 전개되자 총독부는 종전의 미온적인 소작제도개선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소작입법을 본격화하기로 하였다. 


당초에는 소작령을 먼저 제정할 계획이었으나 총독부는 소작쟁의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1932년 12월 10일 「조선소작조정령」(이하 「소작조정령」)을 공포하고 1933년 2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내용

「소작조정령」은 제3자인 재판소가 소작쟁의 당사자들 사이에서 조정을 실시하여 당사자간 화해를 이끌어내 쟁의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주요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소작료나 그 외 소작관계에 대해 쟁의가 발생할 때 「소작조정령」에 의거하여 단독 또는 합의하여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데 반드시 당사자가 아니면 안된다. 


② 조정은 재판소가 담당하는데, 재판소가 사정에 따라 적당하다고 인정하는 자가 있을 때에는 적당한 자가 사건을 권해할 수 있다. 


③ 「소작조정령」은 조정이 성립되었을 경우 그 조정이 재판상의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가지도록 규정하였다. 원래 재판상의 화해는 확정판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므로 당사자의 어느 한쪽이 성립한 조정 사항을 준수하지 않을 때에는 상대방은 재차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도 바로 조정을 채무명의로 해서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따라 강제 집행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의 「소작조정령」에 대해 몇 가지 주목해 두어야 할 특징이 있다.


첫째, 일본의 「소작조정법」은 조정기관으로 재판소와 조정위원회의 2종류를 규정하였는데, 「소작조정령」은 조정위원회를 두지 않고 재판소가 조정을 담당하도록 규정하였다. 「소작조정령」에서 조정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총독부는 '조선의 실정상 적당한 조정위원을 구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 하므로 조정은 재판소가 직접 담당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주장하였는데, 그것보다는 뒤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소작문제에 대해 행정권력이 직접 개입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소작쟁의 사건처리가 표면적으로는 재판소에 의한 사법조정으로 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권해를 하도록 하였다. 


셋째, 권해에 법률상 구속력을 부여하지 않았다. 소작위원회의 권해는 당사자들이 화해할 수 있도록 권유하는 것이므로 권해의 결과 화해가 성립한 경우 그 화해는 재판 외의 화해가 되고, 원칙적으로 법률상의 구속력이 없다. 원래 재판상의 화해는 확정판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므로 당사자의 어느 한쪽이 성립한 조정 사항을 준수하지 않을 때에는 상대방이 재차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도 바로 조정을 채무명의로 해서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따라 강제 집행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삼아 「소작조정령」에서 조정이 성립할 경우 그 조정은 재판상의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가지도록 규정하였지만 소작위원회에 의한 권해가 본지(本旨)인 「소작조정령」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항의 허점을 이용해 권해의 결과 화해가 성립했음에도 불구하고 화해 조항을 이행하지 않는 지주가 속출하게 되자 총독부는 1936년에 이 조항을 개정하여 법률상 구속력을 부여하였다.


넷째, 소작위원회는 사법당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지방행정관료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상 살펴본 것과 같이 「소작조정령」은 표면적으로는 재판소에 의한 사법조정으로 규정하면서도 실질적으로 경찰을 포함한 행정당국의 소작쟁의 개입을 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소작문제, 농촌문제에 대한 경찰, 지방행정권력의 개입 및 통제를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또 소작쟁의 조정에 있어 사법권의 후퇴가 이루어지고 행정적 판단이 사법적 판단보다 우선 적용되게 되었다.


응급 대책으로 「소작조정령」을 먼저 제정한 총독부는 이어 1934년 4월에 「조선농지령」을 제정하였다.


참고자료

總督府農林局,《小作立法及之伴各種機關設置理由》, 1931

殖産局,《小作令朝制定關係書類 豫定․要綱等》, 1932

增永正一,〈朝鮮小作調停令私論〉(1)(2)(《司法協會雜誌》第12卷 第3號; 第4號 1933)

한국농촌경제연구원,《한국 농업․농촌 100년사》상, 농림부, 2003


집필자
배민식(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