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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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식량통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조선미곡배급조정령」

「조선미곡배급조정령의 규정에 의한 미곡배급통제에 관한 건」

「조선잡곡등배급통제규칙」

「조선식량관리특별회계법」

「조선식량관리령」

각 미곡연도 미곡대책


배경

1939년 대가뭄으로 쌀 식부면적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총독부가 발표하자 쌀값이 급등하기 시작하고, 쌀에 대한 매점매석이 일어나면서 쌀의 수급 균형이 급격히 붕괴되었다. 식량사정이 악화되자 총독부는 양곡에 대해 종전의 간접통제 대신 직접통제를 실시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 태평양전쟁의 발발과 1942년, 43년, 44년의 계속된 미곡의 흉작으로 전시식량통제를 계속 강화하였다.


내용

가. 1940년미곡연도 대책
대가뭄으로 쌀값이 급등하고 매점매석 등이 일어나자 총독부는 매점매석 행위 단속, 미가대책요강 발표, 백미제조 금지 등과 같은 임시조치를 취한 후, 12월 27일 「조선미곡배급조정령」과 「미곡배급통제에 관한 건」을 공포하여 본격적인 미곡통제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총독부는 필요한 쌀 수량을 쌀 과잉 도에 할당하여 도지사 책임하에 농민들로부터 쌀을 공출하도록 하였고, 공출미를 취급할 조직으로 도내 곡물업자들로 조직된 도배급조합을, 그리고 쌀의 실물 거래만을 실시하는 기관으로 조선미곡시장주식회사를 각각 설치하였다. 한편 총독부는 1940년 7월 20일 「조선잡곡등배급통제규칙」을 공포하고 잡곡에 대한 배급통제도 시작하였다(8.1 시행).


나. 1941미곡연도 대책
1940년 쌀 수확이 여전히 평년작에 미치지 못하고 전쟁도 장기화되자 총독부는 1940년 10월 “국민식량 수급 조정, 국민생활 안정 및 군수의 완전한 충족”의 3대 목표달성을 근본 방침으로 정하고 식량 출하에서 소비에 이르는 각 부문에 대해 통제를 강화하였다.


특히 각도마다 1년간의 양곡 소비량을 책정해 미곡과 잡곡별로 각도 생산량에 대한 소비량의 과부족 수량을 정하도록 하여 과잉도에 대해서는 과잉수량의 매수 또는 강제보관을 명령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집하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각도에 설치한 배급조합과 조선수이입잡곡중앙배급조합을 1940년 10월 30일 해산시키고 도 단위의 양곡배급조합과 조선양곡중앙배급조합을 설치하였다. 이 시기에는 공출할당 이외의 양곡에 대해서는 아직 상인의 자유거래가 인정되고 있었는데, 단 공출 할당량이 전부 공출되기 전까지는 도내에서 자유거래가 금지되었다. 또한 1941년 6월에는 1941년도 맥류통제요강이 발표되었다.



다. 1942미곡연도 대책
총독부는 1941년 8월 12일 1942미곡연도 식량대책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통제 대상이 미곡, 대맥, 나맥, 귀리, 조, 피, 수수, 옥수수, 기장, 메밀, 대두, 소두로 더욱 확대되었고, 통제 수량은 ① 각도의 과잉 양곡 전량과 ② 각도의 도내에서 조작할 양곡 전량으로 규정되었다. 통제기구로 중앙에 조선양곡주식회사가 새로 설립되어 양곡의 수이출입 및 군수공출을 담당하고, 도에는 종전의 도양곡배급조합 대신 도양곡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공출 강화를 위해 국민총력연맹을 동원하여 공미(供米)보국운동을 전면적으로 전개하기로 하였다.


한편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1941년 10월 3일 일본정부는 미곡생산자에 대한 장려금 지급, 매입가격 인상 등을 내용으로 하는 「조선미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였고, 이 요강에 따라 총독부는 10월 23일 통제미에 대해 구체적인 장려금 교부대책을 마련하였다.



라. 1943미곡연도 대책
1942년 한수해의 영향이 커 1943미곡연도의 미곡수급이 더욱 어렵게 될 것으로 예상되자 총독부는 다음과 같이 식량통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첫째, 쇄미(碎米), 설미(屑米)를 새롭게 통제대상에 포함시켜 쌀의 전 종류를 통제하는 등 거의 모든 양곡을 통제하였다. 

그리고 둘째, 농회, 금융조합연합회, 식산계, 그 외 산업단체 및 국민총력연맹기구가 수하(蒐荷)를 알선하고 도양곡주식회사가 수하하도록 하였다. 

셋째, 종전에 11월부터 다음해 7월까지이었던 공출시기를 1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로 단축하여 가을 추수 후에 집중적으로 공출하도록 하였다. 

넷째, 도와 도사이의 이동은 도양곡주식회사간에 이루어졌으나 이것을 개정하여 조선미곡주식회사가 직접 매입하여 조선내 조절을 하도록 하여 조선미곡시장주식회사를 중심으로 한 통제체제를 확립하였다. 

다섯째, 미곡의 자유 거래를 완전히 중지시켰다. 

여섯째, 공출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부락을 단위로 하여 부락연맹이사장이 중심이 되어 날짜를 정해 공동 수하 및 공동 출하를 하도록 하였고, 할당 수량의 공출은 부락민이 연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일곱째, 배급통장제를 실시하였다.



마. 식량의 국가관리
태평양전쟁이 점점 확대되자 총독부는 식량의 집하, 배급, 소비 전 과정에 걸쳐 강력한 통제를 실시하기 위해 일본의 식량정책에 발맞추어 1943년 6월 21일 「조선식량관리특별회계법」을 공포하여 쌀, 맥류, 좁쌀 등 주요 식량의 생산량(생산자 자가 보유량 제외)과 수이입 식량 전부를 특별회계로 매입하도록 하였다. 또 8월 9일에는 「조선식량관리령」을 공포하여 미곡을 포함한 주요 식량의 전면적인 국가관리를 시작하여 쌀, 맥류, 좁쌀의 경우 행정관청이 정한 자가소비량을 제외한 생산량 전부를 총독부에 매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리고 식량의 매입 및 매각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1943년 10월 13일 조선식량영단을 설치하고 종전의 조선미곡시장주식회사와 13개 도양곡주식회사는 폐지하였다.


참고자료

《朝鮮》, 1940.11; 1941.9; 1941.11

《殖銀調査月報》第39號, 1941.8,

《朝鮮農會報》, 1942.11

岩田龍雄, 金子永徵〈戰時下朝鮮に於ける米穀政策の展開〉(上)(下)(《殖銀調査月報》第64號, 1943.9; 第65號, 1943.10).

朝鮮食糧營團,《朝鮮食糧管理》朝鮮行政學會, 1945

石塚峻,《朝鮮における米穀對策の變遷》友邦協會, 1983

한국농촌경제연구원,《한국 농업·농촌 100년사》상, 농림부, 2003


집필자
배민식(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