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URL 복사

조선미곡창고계획

주제유형
정책/제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조선미곡창고계획


배경
1920년대에 실시된 조선산미증식계획은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의 식량문제 해결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1925년에 현미 1석당 41.95엔까지 뛰어 올랐던 일본 미가 그 후 큰 폭으로 계속 하락하자 조선미 이입 확대를 억제할 수 있는 수단 마련이 일본 국내에서 강하게 요구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29년 5월 일본내각의 자문기관으로 설치된 미곡조사회에서 조선미 문제가 주요 의제의 하나로 논의되어 결국 1930년 3월 “일본에 이출하는 조선미의 수량을 월별 평균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조속히 조선총독부에서 적당한 방책을 수립”할 것을 일본 정부에 답신하였고, 조선총독부는 이를 고려하여 기존의 농업창고건설계획을 수정하여 조선미곡창고계획을 수립하였다.

경과

총독부는 미곡이 추수 후에 집중적으로 출하되어 미가가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고, 일본의 쌀 이출을 계절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1929년에 시험적으로 충남 강경에 250㎡, 전북 불이(不二)농촌에 100㎡, 전남 목포에 234㎡, 합계 584㎡의 농업창고를 설치하고, 위탁미에 대해 저리자금을 융통하여 평균판매를 장려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총독부는 같은 해 11월에는 11년 계획으로 200만석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농업창고건설계획안을 비롯하여 12월 농업창고·국립창고병치안(현미 2백만석 수용의 농업창고를 향후 11년간 건설하고, 현미150만석 수용의 국립창고를 2년간 건설)과 농업창고·상업창고병치안(1930년 현미 48만석 수용의 농업창고와 현미 120만석 수용의 상업창고를 6년간 건설하고, 다시 제2기계획으로 현미150만석의 농업창고를 9년간 추가 건설)을 차례로 입안하였다.


그런데 일본내각의 미곡조사회가 1930년 3월 조선총독부에서 대해 조선미통제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내용을 일본 정부에 답신하자 조선총독부는 기존의 농업창고건설계획을 수정하여 바로 조선미곡창고계획을 수립하였다.


내용
조선미곡창고계획은 계절적 과잉 이출미를 조절하기 위해 우선 제1기 계획으로 1930년부터 1934년까지 5년간 100만석 수용의 미곡창고를 설치하고, 1935년부터 6년간 제2기 계획을 실시하여 150만석 수용 능력의 창고를 추가로 설치하는 것이 중심 내용이었다. 미곡창고는 각각 50만석을 수용할 수 있는 갑과 을의 2종류로 구분되었다.


상업창고(이하 농업창고)는 일반적으로 농업창고라고 하는데 주요 쌀 생산지에 소규모의 창고를 설치하여 수확 후 바로 농민들이 쌀을 방매하는 것을 막기 위한 창고로 농회나 산업조합이 경영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창고규모는 1개소당 250평으로 하고 수용 능력은 1평당 현미 40석으로 총 1만석으로 하여 제1기에 매년 10개소씩 50개소를 건설하여 총 50만석을 수용하기로 하였다. 농업창고에 대해서는 국고에서 창고건설비의 70%와 3년간 경영비가 보조되고, 입고미에 대해서는 1석당 시가의 80%를 대장성 예금부의 저리자금이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을 통해 대출되었다.


한편 을종창고는 주요 쌀 이출항에 비교적 대규모의 창고를 설치하여 일본으로의 이출을 조절하는 상업창고(이하 조선미곡창고회사창고)로 경영은 1930년에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담당하도록 하였다. 조선미곡창고회사창고는 1개소 평균 2,500㎡인 창고를 5개소 설치하여 총 12,500㎡을 확보하는데 그 가운데 7,500㎡은 기존의 창고를 빌리고 나머지 5,000㎡은 신축 또는 매입하여 현미 50만석을 수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계획을 변경하여 건설 또는 매입 7,500㎡, 차고 5,000㎡으로 하였다. 조선미곡창고회사창고에 대해서도 국고에서 창고 건설비 또는 창고 구입비, 창고임차료의 60%, 경영비가 보조되었다. 그리고 창고에 미곡을 보관시킨 기탁자에게는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가 발행하는 창고증권를 발행하였는데 기탁자는 이것을 담보로 은행에서 저리자금을 대출하도록 하여 기탁자는 이 자금으로 다시 미곡을 구입할 수 있었다.


미곡창고설치 계획은 농업창고, 조선미곡창고회사창고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주목해야 할 점은 조선미곡창고회사창고 건설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당시 미곡창고건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일본으로의 계절적 이출 집중을 막는 것이었으므로 이출항에 대규모로 조선미곡창고회사창고를 설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미곡창고설치 계획 및 실적 (단위 : 평, %)

농업창고

조선미곡창고회사창고

계 획

실 적

%

계 획

실 적

%

1930

2,500

3,690

148

1,100

1,655

150

1931

2,500

2,779

111

1,000

1,629

163

1932

1,250

1,567

125

850

1,957

230

1933

1,750

1,786

102

850

2,026

238

1934

1,750

1,762

101

1,250

-

-

주: 조선미곡창고회사창고에는 차고평수(1930, 31년의 실적은 각각 10,711㎡, 8,900㎡)는 제외하였다. 연도는 회계연도.

자료: 朝鮮總督府農林局『朝鮮米穀要覽』1936.


참고자료

朝鮮總督府農林局,《朝鮮米穀要覽》, 1936

朝鮮總督府農林局,《朝鮮ニ於ケル米穀統制ノ經過》, 1938

菱本長次,《朝鮮米の硏究》千倉書房, 1938

小早川九郞,《朝鮮農業發達史》朝鮮農會, 1944

石塚峻,《朝鮮における米穀政策の變遷》友邦協會, 1983

田剛秀,《植民地 朝鮮의 米穀政策에 관한 硏究 : 1930-45년을 중심으로》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3

한국농촌경제연구원,《한국 농업·농촌 100년사》상, 농림부, 2003


집필자
배민식(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