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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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체육회담

주제유형
회의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경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분수령으로 , 남북한의 대화와 교류는 1979년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개최지가 평양으로 결정되면서 시작되었다.북한측은 대회 개최를 불과 2개월여 앞두고대한체육회 회장과 대한탁구협회 회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남북한 단일팀 구성 참가에 관한 협의를 제의하였다. 이를 우리 측이 수락하여 남·북 탁구 협회 간 회담이 총 4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회담은 북한 측이 끝까지 우리 선수단의 대회출전 기득권 보장에 대한 항의를 거부함으로써 아무런 진전 없이 끝나고 말았다.


북한은 1984년 9월 30일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제23회 LA올림픽대회와 그 후의 아시아경기대회 및 세계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을 구성하여 출전하는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의하였다. 


우리 측이 남·북한간의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 증대의 계기로 삼기 위해 이를 수락함으로써 남·북 체육 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이 회담은 3차 회담까지 진행되었으나 본질적인 문제는 전혀 토의도 하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내용

1981년 9월 바덴바덴에서 개최된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총회는 서울을 제24회 올림픽대회 개최지로 결정하였다. 서울이 대회 개최지로 부적당하다고 주장하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 주재 하의 남북체육회담 개최제의를 외면하던 북한은 1985년 7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회담 참가의사를 통보해 왔다. 이에 따라 1987년 7월 15일까지 스위스 로잔느에서 4차에 걸친 남·북 체육 회담이 개최되었으나, 북한측이 IOC 중재안을 거부하고 서울올림픽대회의 남북한 공동주최를 주장함으로써 구체적인 성과 없이 결렬되었다. 


그 후 남북은 1989년 3월부터 1990년 2월 까지 9차례의 본회담과 6차례의 실무대표접촉을 통해 북경 아시안게임에 단일팀을 구성하여 참가하는 문제를 협의하였다. 양측은 단일팀 구성에 관한 10개항 중 선수단장 문제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항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북한측은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회담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회담 결렬을 선언하였다. 


남북한은 북경 아시안게임 경기기간 중 체육부장관 접촉을 통하여 1990년 9월 23일 남북통일 축구대회개최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는 한편,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 등 주요 국제경기대회에 남북단일팀을 구성·참가하는 문제와 남·북 체육교류문제 협의를 위한 남·북 체육 회담을 조속한 시일 내에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결과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한 체육인들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방문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남북통일축구대회가 1990년 10월 9일부터 13일까지 평양에서,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이어 남북한 체육회담이 1990년 11월부터 1991년 2월까지 4차례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제 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단일팀을 구성하여 참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참고자료

박승화,〈스포츠 남북 단일팀 구성에 관한 연구-‘90년 북경 아시안게임을 중심으로〉경희대학교 고황논문집, 1990


집필자
한범수(경기대학교 관광개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