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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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개혁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경

우리나라 정부가 추진한 대표적인 금융개혁은 금융기관의 경영자율성을 높인 금융자율화, 금융시장의 기능을 강화시킨 금리자유화, 그리고 금융위기에 대응하여 금융산업의 구조를 변화시킨 금융구조 조정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금융개혁의 대부분은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어 금융위기를 거쳐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금융자율화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금리자유화는 1980년대 후반에 시도된 후에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고, 금융구조 조정은 사금융양성화 조치를 예외로 한다면 1997년 외환·금융위기를 계기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72년 8.3조치의 일환으로 시행된 사금융양성화 조치는 사금융시장을 제도금융으로 편입하는 것으로 금융구조 조정에 해당한다. 그 결과로 단자회사(투자금융회사), 상호신용금고가 신설되고 신용협동조합이 활성화됨으로써 이 조치가 비은행금융기관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단기금융시장이 발전하는 계기로도 작용하였다. 


우리나라가 금융개혁에 나서게 된 것은 금융부문에서 자율과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원리가 도입되지 않고서는 금융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와 금융시장의 효율성 제고는 물론 국민경제의 건실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국제적 지위 상승으로 선진국의 금융시장 개방압력이 가중된 점도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게 한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금융자유화 및 개방화의 결실을 보지 못한 채 1997년 말에 외환·금융위기를 겪게 되었다. 금융자유화 및 개방화의 효과가 금융기관의 부실 누증, 단기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입 등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타나 외환준비 고갈에 따른 외환위기 사태까지 간 것이다. 이에 따라 1998년과 1999년에는 강도 높은 금융구조조정이 추진되어 상당수의 부실금융기관이 금융시장에서 퇴출되었다.


내용

1980년대에 접어들어 국제수지 악화에 따른 외채위기와 함께 중화학공업화 실패에 따른 부실기업 증가로 국가주도의 성장금융체제는 1980년대에 와서 중화학공업화와 함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에 따라 정부가 경제정책 목표를 성장보다는 안정을 중시하게 되고 그에 맞추어 금융의 자율화를 추진하였다. 정부는 정부소유의 시중은행을 단계적으로 민영화하고 은행경영에 간섭을 줄이기 시작하였다. 그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금융기관 진입장벽을 낮추어 시중은행, 투자금융회사, 상호신용금고, 투자신탁회사의 설립이 증가하였고, 금융기관의 업무도 다양화되었고, 각종 신금융상품도 등장하였다.


금융자유화의 핵심인 금리자유화는 1988년 12월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정책금융을 제외한 모든 여신금리와 만기 2년 이상 장기수신금리에 대한 최고이율규제를 철폐하는 등 금리자유화 조치가 폭넓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1989년 이후 물가불안으로 인해 금리가 급상승함에 따라 창구지도에 의한 금리규제가 재개되어 금리자유화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1991년 8월 정부와 한국은행은 4단계 금리자유화 추진계획을 수립·발표하였다. 1991년 11월부터 1995년 11월까지 3단계에 걸쳐 대부분의 금리가 자유화되었으며 1997년 7월에는 3개월 미만 저축성예금 금리도 자유화되었다. 현재에는 모든 금리가 자유화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접어들어 본격화된 금융의 자유화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가운데 1997년 외환·금융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위기의 원인과 상관없이 다른 나라의 구조조정 예에 따라 우리나라는 주로IMF 프로그램에 의거하여 각 부문의 구조조정이 전개되었고 금융부문도 마찬가지이었다.


첫째, 부실금융기관 등이 퇴출, 인수 및 합병, 국유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리되었다. 정부는 이 과정에 160조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투입하였고 정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둘째, 정부는 금융·외환위기를 계기로 금융의 자유화를 적극 추진하고 금융시장도 거의 완전히 개방하게 되었다. 


셋째, 정부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감독체제를 재정비하고 기업 및 금융기관의 회계제도 및 공시제도를 강화하였다. 정부는 금융감독위원회를 설립하여 금융감독체계를 일원화하였다.


넷째, 금융기관이 정리되는 과정에 금융기관의 국유화, 금융기관의 인수 합병, 금융지주회사 등장 등으로 인해 금융기관의 소유 지배구조가 변화되었다.


다섯째, 금융위기를 계기로 증권시장제도가 정비되고 증권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참고자료

韓國銀行,《韓國銀行50年史》, 2000
한국은행,《우리나라의 금융제도》, 1993, 1999, 2006
한국은행,《우리나라의 금융시장》,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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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배영목·박원암·김석진·연강흠,《한국의 은행 100년사》, 2004
韓國證券業協會,《韓國證券業協會50年史》, 2004
이영훈·박기주·이명휘·최상오,《한국의 유가증권 100년사》증권예탁결제원, 2005
生命保險協會,《生命保險協會50年史》, 2000
성대규,《한국보험업법》도서출판 동원, 2004


집필자
배영목(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