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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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간무역협정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UR이후의 뉴라운드

1. 그린라운드(GR)
WTO 체제에서 무역과 환경문제를 조화시킬 수 있는 규제규범을 마련하려는 다자간 협상을 말하며, 이로 인해 환경을 무시한 물품 및 서비스 생산이나 활동은 무역규제를 받게 되므로 그린라운드가 타결될 경우 그 파급영향이 UR 보다도 클 것이다. 물론 그린라운드의 추진배경은, 지구환경을 보호하자는 측면에 있지만, 환경규제를 이유로 무역을 규제하자는 것이기에 개도국들에게는 또 다른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우려가 높다.


2. 노동라운드
국가별 근로기준과 조건의 차이는 제품생산 비용의 차이를 유발하고 궁극적으로 상품의 국제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근로조건의 국제적인 형평성에 대한 문제를 무역과 연계시켜 모든 국가들이 최소한의 근로조건이나 노동권을 보장해야만 국제간 공정무역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주장이 선진국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3. 기술라운드
개발국가의 기술개발정책과 이에 의한 산업자원이 세계시장을 왜곡하고 세계 후생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 기술 개발규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술 정책의 국제규범 관련 분야는 기초연구에 대한 공공부문의 지원, 기술확산정책, 인력개발, 민간부문의 연구개발 지원과 과학기술에 대한 국제적 접근성, 전략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국제적 이해, 과학기술 분야의 국제적 협력,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문제 등이 있다.


4. 경쟁라운드
국가간 서로 다른 경쟁정책에 의한 경쟁조건의 차이를 제거하여 외국상품의 시장접근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국내외 기업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조건하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경쟁정책과 관련한 국제적 규범제정에 대한 논의의 요지이다. 국제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쟁조건의 문제들은 수직협정 및 수평협정, 유통체제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규제, 독점지배력의 남용, 국제적 기업인수합병 및 기업간의 국제협정, 덤핑 및 반덤핑조치 등이 있다.


근거

GATT 조인, 1947년


배경

다자간 무역협정은 양국간 무역협상이 아닌 수십개 혹은 백여개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무역협정이다. 다자간 무역협정은 세계무역에서의 장애가 되는 모든 요인을 없애고 자유로운 무역을 통하여 세계 무역을 확대·발전시킬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우르과이라운드(UR), WTO등 다수의 국제협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자간 무역협정은 통상과 원료획득에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경제질서를 확립하자는 취지에서 1946년 2월 〈UN 경제사회이사회(Econmic and Socail Council of UN: ITO)〉창설에 합의하고 ITO 설립을 위한〈아바나 헌장〉을 채택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는 세계적 경제혼란의 와중에서 강대국들이 과잉생산과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장확장의 노력과 보호무역주의 성향의 마찰로 인해 2차세계대전이 발발 했음을 시인하는 데에서 출발되었다.


그러나 이 국제무역기구의 헌장은 이상에 충실하고 헌장이 엄격하여 그 설립이 유산되고 말았다. 이때이 헌장을 기초로 한 당시 준비위원회의 회원이었던 각국 정부는 헌장의 발효를 기다리지 않고 우선적으로 관세 및 비관세 무역장벽을 경감하기 위한 협정에 합의하여 1974년 4월부터 제네바에서 23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관세인하 협상이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상호관세를 위하여 약속한 관세율과 관세인하의 효과를유지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무역측면에서의 규정을 하나의 조약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이다. GATT는, 1948년 1월 1일을 기해 세계무역의 기본 규정으로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WTO, UR 등의 협정이 이어지고 있어 자유무역 기조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내용

다자간 무역협상은 기본적으로 상호간에 시장을 개방하여 무역을 활성화하고 국제상 규범의 정립을 통해 국제교역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GATT의 지속적인 관세인하 협상 등에 힘입어 공산품에 대한 관세는 급격히 인하되어, 1999년에는 평균 4% 미만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10년 동안 세계경제 성장률은 연평균 5% 정도였는데, 그와 같은 높은 성장률은 부분적으로 낮은 교역장벽의 결과였다. 세계 상품교역량은 1950년대에 비해 16배 증가하였으며,같은 기간동안 세계 생산량에 대한 상품수출의 비율은 8%에서 15%로 약 2배 증가하였다. 국부의 65% 정도를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시장개방과 세계 교역확대의 주요한 수혜자 중 하나이다.


최근의 다자간무역협정인 ‘뉴라운드 협상’은 시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에 개시되었다.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반덤핑조치 발동, 긴급수입제한조치 시행 등 협정상의 무역제한 조치를 남용하고 자국시장을 보호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자유무역주의에 대한 역류를 막고 세계시장 확대를 위한 개방기조를 유지하기 위하여 다자간 무역협상이 필요한 것이다. 국내시장의 개방과 국가간 무역의 확대는 기업 입장에서는 한정된 국내시장을 벗어나 무한한 세계시장을 향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국내시장에서 세계 우수의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여야 한다는 양면을 가지고 있다. 시장 개방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좋은 측면을 제공한다. 우선 국내시장개방에 따라 외국의 질 좋은 물건과 서비스가 값싸게 제공된다. 소비자는 같은 예산으로 종전보다 높은 경제적인 후생을 향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개방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국내 분야 종사자나 기업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경쟁력을 잃은 산업이나 기업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실업자가 발생하여 가계와 사회에 짐이 될 수도 있다.


1.GATT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서서히 연합국측의 승리가 굳어져 감에 따라 국제경제질서의 회복을 위한 협의과정에서 연합군 진영 국가들은자유무역의 확대와 세계의 고용·생산 및 소비를 증대시킨다는 기본원칙에 합의하고 전쟁이 끝남과 때를 같이하여 새로운 국제무역질서와 국제통화제도를 이끌어 나갈 국제경제기구의 설립을 위한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최초로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국제통화·금융 분야에서 IMF, IBRD 창설이었으며 이들은 1945년부터 활동을 개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제무역 분야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국제무역기구를 설립하려던 움직임이 순조로운 진전을 보지 못했다.그 이유는 1948년 〈아바나회의〉에서 채택된〈 ITO헌장〉이 관세 및 비관세무역 제한에 대해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여 이상에 너무 치우쳤다는 각국의 비난과 함께 각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가 대립되어 제안국인 미국에서조차 의회의 비준을 얻지 못해 결국 발효되지 못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ITO 헌장〉의 초안을 검토한 각국 정부는 헌장과는 별도로 세계교역의 확대를 위해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 경감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즉 1947년 제네바에서 관세인하 협상을 계기로 〈ITO 헌장〉의 통상정책 부분을 반영하여 1948년 및을 보게 된 것이 바로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이다. GATT는 하나의 경제기구라기보다 일반적인 협정에 불과하지만, 사무국을 비롯하여 총회, 이사회, 각종 위원회 등을 그 밑에 두고 있기 때문에IMF와 함께 사실상의 국제무역기구로서 세계경제질서를 주도하여 왔다.


2. UR협상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으로 세계경제는 저성장기로 돌입하였으며, 특히 미국의 경제여건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미국의 산업경제력 저하로 인한 무역수지의 적자확대와 신흥공업국들(NICs)의 수출신장으로 국가별 무역불균형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들어 보호무역주의 및 지역주의 경향이 확산되고 국가간 통상마찰이 심화되어 GATT체제에 대한위협이 증대되었다. 특히, 선진국들은 섬유와 철강 등 사양산업 보호를 위해 GATT규정에 유배되는 수출자율규제(VER) 시장질서유지(OMA) 등 소위 회색지대 조치를 남용하였다. 또한 선진국들은 강력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양자간 압력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을 취하였고 이에 따라 GATT체제에 대한 재정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86년 9월 우루과이의 푼다 델 에스테시에서 GATT 주관하의 제8차 다자간 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가 출범한다. 일부 선진국들은 자국의 경쟁력 높은 서비스와 지적소유권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시장개방 확대를 위한 다자간방식에 대한 새로운 규범마련을 추구한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섬유교역과 밤덤핑제도의 개선 등 개발도상국의 관심사항을 모두 협상 의제로 다룰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관심사항을 모두 포함한 15개 의제를 중심으로 GATT회원국 105개국이 참여하였다. UR협상은 상품교역에 관한 협상 의제, 즉 관세, 비관세, 농산물 및 세이프가드 등 종전까지의 다자간협상에서 취급하였던 의제 외에도 서비스, 지적소유권, 무역관련투자 등 새로운 의제들이 추가되어 지금까지 개최되어 온 다자간무역협상 가운데 명실공히 무역전반에 걸친 최대의 협상이있으며, 가장 포괄적이고 복잡한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3.WTO
WTO는 GATT의 근본적인 구속력의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는강력한 세계무역기구로'무역에 관한 UN'이라고 할수있다. 기존의 GATT가 다루지 못하였던 섬유·농산물·동경라운드협정 등 다자간 체제로 복귀시키고 서비스·지적재산권 분야 등 새로운 분야를 포괄하기 위해서 탄생하게 되었다.


모로코 각료회의의 서명을 거쳐 1995년 7월부터 발효된 UR협정으로 탄생된 WTO는 국제교역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식적인 기구로서 상품, 서비스, 지적재산권 등 광범위한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WTO 설립은 산업·무역의 세계화와 함께 국경 없는 무한경쟁시대로 돌입하는 새로운 국제무역환경 기반을 조성하였다. 미국 등 일부 국가가 쌍무압력을 넣거나 국내 정책에 대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등의 부담은 약해지고, 다자주의가 보다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슈퍼 301조 같은 일방적 조치나 지역주의 등을 일부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환경문제는 출범 후 2년의 검토 기간을 거쳐 협상의 추진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으며 새로운 협상과제로는 근로기준(BR)·기술(TR)·경제정책(CR) 등이 있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EU(European Union:유럽연합), NAFTA(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북미자유무역협정) 등 지역주의가 극심해지는 데 따르는 불이익이나 미국, EU 등 선진국의 일방적인 무역보복조치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참고자료

김주남, 《다자간 무역협정 과 대처방안》울산상공회의소, 1981
조영정, 〈WTO 다자간 무역협정에서의 최혜국대우원칙〉한국국제통상학회, 2004
박대위, 《무역개론》박영사, 2003


집필자
김학민(경희대학교 무역학부 조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