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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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무국

주제유형
정책/제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해방 이후 미군정의 한 활동부서로서의 학무국은 1945년 9월 11일 미군정 교육담당관으로 배속된 미육군 대위 라카드(E.N. Lockard, 이듬해 1월 소령으로 진급)가 중앙청에 사무실을 개설함으로써 사무를 개시하였다. 교육담당관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첫째로 휴교상태에 있는 학교의 문을 여는 일, 둘째 한국인 교육지도자로부터 교육문제에 대한 조언을 얻는 일, 셋째로 학무국과 각 학교에 일본인 직원을 대신하여 일할 수 있는 한국인을 얻는 일 등이었다. 


라카드는 9월 16일에 그가 회견한 교육지도자 16명을 불러 한국인으로 구성되는 자문기관을 만들겠다는 뜻을 밝히고, 투표로써 교육계의 각 분야를 대표할 만한 인사를 선택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 결과 김성달(초등교육, 휘문의숙 교장), 현상윤(중등교육, 경성대학 예과부장), 유억겸(전문교육, 연희전문 부교장), 김성수(고등교육, 보성전문 교장), 백낙준(교육전반, 연희전문 교수), 김활란(여자교육, 이화여전 교수), 최규동(일반교육, 중동학교 교장)의7명이 선출되었고, 그들이 곧 한국교육위원회(The Korean Committee on Education)를 조직했다.


9월 22일에 고등교육 담당자인 김성수가 하지 중장의 정치고문으로 발탁되자, 그 대신으로 군정장관의 추천에 의하여 백남훈이 위원으로 취임하였으며, 이어 유억겸이 학무국 한인국장으로 기용되고 김성수는 다시 교육위원회로 돌아오게 되었다. 11월에는 윤일선(의학교육, 세브란스의전 교수), 조백현(농업교육, 수원고등농림학교 교장), 정인보(학계대표, 연희전문 교수) 등 3명을 추가하여 10인의 위원회로 확대 개편되었다. 


한국교육위원회의 공식 성격은 자문기관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교육의 모든 부문에 걸쳐 중요한 모든 문제를 심의·결정하였고, 각 도의 교육책임자, 기관장과 같은 주요 인사문제를 다루었다. 


교육위원회의 조직과 더불어 서둘러야 했던 것은 학무국을 한국인 직원으로 재편하는 일과, 종래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는 각 도의 교육책임자와 전국의 수많은 학교장의 자리를 한국인으로 채우는 일이었다. 일본인으로부터 정식으로 학무국을 접수하고 그 재조직에 착수한 것은 9월 14일이었다. 편수책임자로 최현배, 사회교육 담당자로 최승만이 취임한 것이 19일이었는데, 이후로 상당수의 한국인 직원이 임명되었다. 10월 6일 학무국의 조직은 학교담당, 편수담당, 기획담당, 문화 및 후생복지 담당, 기상담당, 법령정비국, 사업국 등으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미군정관에 의한 충원계획이 불확실했으며, 조직의 활동도 상당히 군대식으로 짜여져 민사를 처리하기에는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10월 12일 다시 학무국을 1국 6과로 개편하고, 각과에 한국인 과장을 임명하였다. 11월 16일에는 국장실, 경리실 및 4과로 다시 개편하였으며, 자문기관인 2개의 위원회, 즉 한국교육위원회와 중앙교육계획위원회를 상설기관으로 두었다. 12월 19일에는 유억겸은 한국인 학무국장으로, 오천석은 부국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학무국은 9과로 개편되었다. 유억겸은 학무국 한국대표로서 대외적인 일만 담당했으며, 교육에 관한 내부적인 일과 전문적인 정책결정은 오천석이 전담하여 처리했다. 당시의 조직은 일종의 이중조직으로, 10월 20일 경에 도착한 미군으로 각과의 책임자를 삼는 동시에, 이와 병행하여 각과에 한국인 책임자를 두어 각기 책임을 분담하게 하였다. 즉 한국인 학무국장과 미군정 학무국장 밑에 각기 한국인 과장과 미군장교 학무담당 과장들이 서로 분리되어 교육관계 행정을 통괄한 것이다. 


1946년 1월 21에는 국장실·연구기획실·특수학과실·총무실 등 4개의 실과 편수과·초등교육과·중등교육과·고등교육과·성인교육과·문화과·기상과 등 7과의 조직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1946년 3월 29일 학무국은 「군정법령」 제64호에 의해서 문교부로 승격되었고, 같은 해 7월 10일에는 새로운 문교부사무분장이 규정됨에 따라 문교부 기구는 7국 1舘 21과 20계로 개편되어,1948년 정부수립 당시까지 약간의 수정을 보면서 존속되었다.


미군정 말기까지 지속된 문교부 직제는 총무국(인사과, 서무과, 재무과), 보통교육국(초등교육과, 중등교육과), 고등교육국(대학교육과, 특구교육과, 사범교육과), 과학기술교육국(농업교육과, 공업교육과, 상업교육과, 가정교육과, 과학진흥과), 편수국(경리과, 번역과, 편찬과, 교재과), 성인교육국(성인교육과, 교도과, 문화시설과, 예술과, 체육과), 관상국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참고자료

김성학과 한준상《현대한국교육의 인식》청아출판사, 1990
손인수《한국교육사II》문음사, 1987
오천석《한국신교육사(하)》광명출판사, 1975
정태수(편)〈미군정청 학무국의 역사(1945.9.22-1946.2.28)〉《미군정기 한국교육사자료집, 상》홍지원, 1992
한국교육십년사간행회《한국교육십년사》풍문사, 1960
한국교육문제연구소《문교사 1945-1973》중앙대학교출판국, 1974


집필자
김경용(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