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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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동 1호 시험 발사

주제유형
사건/사고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발생원인

1990년대 초 북한은 핵개발 시도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위기를 초래하였다. 이 위기는 Carter 전 미국대통령의 방북 중재에 기초하여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동결하고 그 댓가로 한국과 여타 주변국들이 북한의 경수로 건설과 중유 공급을 지원하는 「제네바 협정」으로 해결되었다. 한편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저지와는 별도로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배치를 사전에 저지하기 위하여, 북한의 '미사일기술 통제체계(MTCR)' 가입과 수출 및 생산 중지문제 등에 관해 1998년 8월 이전에 두 차례 (4월과 6월) 북한과 미사일 협상을 개최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1998년 4월 6일 파키스탄이 시험 발사한 Ghauri 미사일이 북한의 지원으로 제조된 것이라고 판단하여 4월 17일부터 제재조치를 부과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은 미사일기술통제체계(MTCR)에 의거, 완성된 미사일 또는 부품을 이전하거나 이전받는 국가들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북한의 광업개발 무역회사인 '창광신용회사'와 파키스탄의 미사일 개발 연구소인 'Khan Research Laboratories'에 2년간 제재조치를 부과하였다. 또한 이란이 7월 22일 북한의 노동 미사일과 흡사한 Shahab 미사일을 시험발사 하였는 바, 북한과 이란간의 미사일 기술협력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었다. 미국의 대북 제재는 1992년 3월 북한의 대이란 미사일 개발지원과 관련한 제재 이후 5번째이다. 북한은 미국의 제재조치에 반발, 1998년 8월 31일 함북 무수단리 대포동 지역에서 로켓 1기를 동해상으로 발사하였다. 9월 4일 북한은 동 발사체가 탄도미사일이 아닌 과학적 용도의 인공위성이며 동 위성이 성공적으로 지구궤도에 진입해서 작동 중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의 추가 조사 결과, 3단계로 이루어진 인공위성을 장착한 로켓 발사 시도가 있었으나 궤도진입에는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내용

미사일 발사 직후 한국, 미국, 일본 3국은 동 로켓을 북한이 1994년 이후부터 개발해 온 대포동 1호로 판단하고, 이와 같은 행동이 한반도 및 국제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고체연료를 사용한 운반체의 엔진 연소와 탄체의 다단계 분리 등 제반 기능을 이상없이 수행한 점으로 보아 북한은 중ㆍ장거리 미사일 개발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이 1993년 5월 시험발사에 성공하여 실전배치중인 노동 1호(사정거리 1,000km)는 한반도 전역의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으며, 개발 완료단계에 있는 대포동 1호(사정거리 2000∼2,500km)는 일본 전역과 대만, 홍콩, 중국 본토 일부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능력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지역 국가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자체 개발한 미사일을 중동지역 및 서남아시아 등 잠재적 미사일 수요국에 수출함으로써 심각한 국제적 불안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거리가 5,500km 이상이면 대륙간 탄도미사일(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ICBM)로 분류되는데, 당시 로켓발사 시험으로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 완료 시기가 미국이 예상해온 2010년보다 훨씬 앞당겨질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미국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으로도 부상하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일본측의 제기로 9월 8일 비공식회의를 개최하여, 북한이 사전 통고없이 로켓추진체를 발사한데 대한 유감 표명 및 이와 같은 긴장고조 행위 자제 촉구 등을 내용으로 하는 안보리 의장명의 대언론 구두성명을 발표하였다.


북한이 대포동 1호를 발사한 이유는 대내외를 겨냥한 다목적용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대내적으로는 군사강국의 이미지로 북한주민의 사기를 진작하고 결속을 강화하고자 했을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미사일 기술의 개발과 실전 배치로 남북한 군사적 역학관계에서 우월적 위치를 확보하고 남북한 관계에 영향을 주고자 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북한은 미국의 제재에 ‘벼랑 끝 전술’로 맞서려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미국의 제재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계에 공표함과 동시에 미국이 제재를 취소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북한은 핵개발이라는 벼랑 끝 전술로 미국으로부터 제네바합의이라는 양보를 얻어낸 바 있고 이번에는 미사일 시험 발사라는 벼랑 끝 전술로 대북제재에 대한 양보를 얻어내고자 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Clinton 행정부는 Perry 특사를 파견해 북한과 협상에 나섰고 북한이 미사일개발 중단을 선언하는 조건으로 대북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하는 데 합의하였다 (베를린합의 1999).


참고자료

외교통상부,《외교백서》, 1998
국방부,《국방백서》, 2000
우승지,〈평화번영정책과 현단계 남북관계의 이해〉《정책연구 시리즈 2003-8》외교안보연구원,2003
북한경제팀,〈최근 북한을 둘러싼 주요 현안의 전개와 전망〉《조사부 업무참고자료 99-5》한국은행,1999
정영태, 유호열,〈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배경과 파장〉《통일경제》, 1998 (9월)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교수 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