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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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제네바 합의

주제유형
조약/회담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경

미국과 북한은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룬다. 소위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로 알려진 이 합의문의 공식 영어명칭은 "Agreed Framework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Geneva, October 21, 1994"이다. 이 합의문은 1990년대 초반 이후 고조되어 온 북한 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북미간의 기본 합의문으로, 2002년 가을 북한의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논란으로 양국이 합의의 붕괴를 선언할 때까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기본적이고 실질적인 틀이었다.


내용

1994년 6월까지 핵 위기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이 논의될 정도로 고조되었으나, 6월 중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평양회담〉에서 극적인 합의를 이루었다. 북한의 강석주 외교부 제1부상과 미국의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핵 대사는 이후 중단되었던 북미 접촉을 재개하여 7월 제네바에서〈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을 개최하였고, 8월 12일 공동합의문(Agreed Statement)에 서명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10월 21일의 제네바 합의문은 카터-김일성 회담 이후 일련의 북미대화에 기반하고 있다.


제네바 합의에서 북미 양국은 북한 핵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정치경제관계를 정상화하고 핵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하기로 약속했다. 서로에 대한 공동 상응조치로 이루어진 이 합의문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위협과 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보장을 해 주기로 했으며, 북한의 흑연감속로(graphite-moderated reactor)를 대체하는 2기의 경수로(light-water reactor)를 제공하는 문제를 주선해 주기로 했다. 또한 북한의 핵 프로그램 동결로 인한 에너지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해 연간 50만톤의 중유를 북한에 공급해 주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핵확산방지조약(NPT)의 회원국 지위를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조약하의「안전담보협정(Safeguards Agreement)」의 규정을 이행하기로 약속했다. 북한은 또 남북한 관계에 대해서도 1991년 12월 31일 남북한 사이에서 합의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단계적 이행과 남북회담의 시행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 및 일본과 함께 다국적 컨소시움인 케도(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 KEDO)를 설립하여 제네바 합의의 실질적 이행에 들어갔으며, 북한 역시 기존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였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는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북미간의 논란 끝에 붕괴되었다. 미국은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 프로그램을 진행시켜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며 중유공급을 중단시켰으며, 북한 역시 미국이 합의에 규정된 중유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제네바 합의의 이행을 거부하면서 동결된 핵 프로그램을 재가동시켰다. 이에 따라 1994년의 제네바 합의는 실질적으로 폐기되어 사문서화되었으며, 제 2차 북한 핵 위기가 시작되었다.


참고자료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 《두개의 한국》 길산, 2003
조엘 위트(Joel S. Wit) 외, 《북핵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협상》 모음북스, 2005
Leon V. Sigal, 《Disarming Strangers: Nuclear Diplomacy with North Korea》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홈페이지, <(http://www.kedo.org )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