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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북한 노동미사일 발사

주제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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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원인

북한은 1993년 5월 29일에 노동 1호 미사일을 시험 발사해 성공했다. 사정거리 1,000km 정도로 추정되는 500km 정도 비행하다가 동해에 떨어졌는데, 노동 1호 미사일의 성공적인 발사로 인해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또한 노동 1호 미사일의 발사는 당시 고조되고 있던 북한 핵 위기에 대한 북한의 시위형식을 띠기도 했다.

내용

북한은 1993년 3월 12일「핵확산방지조약(Nonproliferation Treaty, NPT)」을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NPT 발족이후 최초로 북한이 규정에 명기된 90일간의 유예기간 이후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북한 핵 문제는 본격적인 위기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당시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의심이 증폭되면서 이를 검증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과 압력이 증대되었는데, 북한이 이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NPT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의 과거 핵활동의 의혹에 대해 특별사찰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이에 북한은 노동 1호 미사일을 동해로 시험발사하며 핵 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했다.


2006년 7월 5일에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북한의 미사일은 크게 노동 미사일, 스커드 미사일 그리고 대포동 미사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노동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1000km 정도로 가장 짧은 것이다. 그러나 노동 미사일 역시 한반도 전체와 일본 열도를 그 사정거리 안에 둠으로써 동북아시아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노동 1호 미사일은 북한이 1988~89년경에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97∼98년도에 실전배치하여 노동 1호 미사일 9기로 편성된 3개 포대를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미사일의 모델은 구 소련이 1950년대에 개발한 잠수함 발사 탄도탄인 SS-N-4, SS-N-5와 중국이 1960년대에 개발한 CSS-2 미사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3년 5월의 노동 1호 미사일 실험에서 특이한 점은 이 실험에 이란과 파키스탄이 참관단을 파견하여 실험과정을 살펴보았다는 사실이다. 이미 3월에 이란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여 탄도미사일의 협력 문제와 노동미사일에 대해서 논의했으며, 김영남 외교부장이 1992년 8월에 파키스탄을 방문하여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이 핵 위기에 대한 강경대응으로서 뿐만 아니라 미사일의 대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참고자료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 《두개의 한국》 길산, 2003
Joseph S. Bermudez Jr. 《A History of Ballistic Missile Development in the DPRK》Center for Nonproliferation Studies, Occasional Papers, #2, 2003
(http://www.globalsecurity.org)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