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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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선언(1990.10)

주제유형
사건/사고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발생원인

노태우 대통령 러시아 방문과 모스크바 선언 (1990)

<개요>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12월 13일부터 15일까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한소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문제 해결에 군사력 사용을 배제해야 하며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단계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하고, 양국 관계의 기본을 규정하게 될 모스크바 선언에 서명하였다.


내용

<정상회담의 성과와 주요 내용>

O 양국 관계 기본조약

「대한민국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간 관계의 일반원칙에 관한 선언」이란 명칭의 이 선언문은 전문과 양국 관계의 기조가 될 6개 기본원칙 그리고 11개 합의사항을 담고 있다.
6개 기본원칙은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일반적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원칙을 넘어서 소련측에서는 동북아, 특히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인하려는 의도와 우리 정부가 한·소 간의 기본 장전에 담고자 희망하였던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인식 그리고 소련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대북한 관계라는 현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를 절충함으로써 작성된 양국관계의 기본적인 원칙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선언의 핵심부분이 되는 11개의 기본합의에서는 (1) 양국간의 선린·신뢰·협력, (2) 경제 및 선진과학·기술 분야에서의 협력, (3) 제 분야에서의 교류확대 등을 다짐하고, 후반부에는 양국이 공히 인정하고 있는 한반도문제 해결에 대한 기본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한·소 양국 정상이 공동성명의 형식을 택하지 않고 「선언」의 형식을 빌렸다는 점은 통상 공동성명이 합의내용은 물론 양측의 상반된 의견까지 서술되는 데 비해 선언은 완전히 합의된 사안과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담을 때 사용되는 형식인 점을 감안할 때에, 이 선언에서 발표된 내용은 ‘최소한의 합의’이며, 선언에 표현되지 않은 북한에 대한 양국의 협력과 관련된 상당한 부분에서도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소련의 배후지원에 대한 가능성을 낮춤으로써 소련의 지원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북한이 한반도에서 무력을 사용한 도발을 할 가능성과 그에 준하는 위협의 가능성이 상당히 감소되다. 또한, 1991년부터 소련과 북한 사에에 석유도입 등을 비롯한 모든 물자의 경화 결제방식이 적용됨으로써,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느끼게 되었으며 이러한 압력은 북한으로 하여금 대내외 정책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하였다.
또한, 노태우 대통령은 한국전쟁과 대한항공기 격추사건에 대한 소련의 책임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선언에서는 소련측의 난색으로 “양국 관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라는 문안 수준에서 봉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O 경제 협력

양국은 경협 등 경제 협력관계에 있어서는 “상호이익을 위한 선린 신뢰 협력의 정신으로 제반관계를 구축한다”는 원칙 하에 정치·경제·통상·문화·과학·인도적인 분야 및 여타 분야에서의 유대와 접촉강화를 다짐하였다. 이에 양국은 경제협력과 관련된 과학기술협력, 투자보장 및 2중과세방지 등과 관련된 4개 협정에 조인하고 앞으로 정부간 실무협의를 통해 더욱 구체화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정상회담이나 선언에서 경협의 규모 등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은 채 상호보완적 입장에서 협력을 강화한다는 점만 재다짐 했는데 우리측 관계자들은 소련의 국내사정 등의 이유로 인해 향후의 양국간의 구체적 협의가 있은 후에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선언의 11개 항의 합의사항 중 ‘정기적 협의’를 갖기로 한 합의와 관련된 경제분야에서 양국 관계는 더욱 긴밀해 질 수 있는 기반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한국 기업의 현지진출, 합작공장 설치 등이 가속화될 것이며 시베리아 자원의 공동개발, 도로·항만·통신·주택 등의 건설사업이 추진되고 한국의 소비재공급이 증가될 수 있게 되었다.


<평가>

노태우 대통령의 소련 방문은 세계의 고무적인 변화의 상징으로 아시아·태평양과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도 더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었다. 한국의 국가원수가 역사상 처음 소련을 방문하고 크렘린에서 한소정상회담을 갖는 현실 자체가 놀라운 변화였다. 게다가 양국 정상이 서명·발표한 공동선언은 양국 간에, 그리고 한반도와 광대한 아시아·태평양지역에 평화와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동서냉전의 주역의 하나인 소련과 냉전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의 일방인 한국의 최고지도자가 양국 수교 후 불과 3개월 만에 이같은 평화선언을 도출했다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향한 걸림돌을 제거하고 이를 위한 소련의 지원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양 정상이 공동 서명한 ‘모스크바 선언’은 향후 양국의 지속적 우호 선린관계를 명백히 하는 기본헌장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으며, 한국측의 초안 제안을 소련측이 거의 그대로 수용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양국의 입장이 기본적으로는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에 다져진 기본관계를 바탕으로 어떻게 양국이 구체적으로 협력을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과제는 향후 양국에게 남겨진 숙제였다. 특히, 경제협력 분야는 양국 관계가 친밀하게 발전될 수 있는 중요한 분야로 이에 대한 양국의 진지한 노력이 요청되었다. 차관의 공여와 수교를 통한 안보적 목적의 영향력 제공이라는 거래라는 구도를 넘어서 동북아에서 한국과 소련이 냉전해소를 위한 진정한 협력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구체적으로 답하기 어려웠다. 다만 과거 적대국이었던 양국이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협조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하였다는 점이 가지는 의의는 결코 무시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참고자료

하용출 (편), 『북방정책: 기원, 전개, 영향』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
서대숙 (편), 『한국과 러시아관계: 평가와 전망』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2001
한국언론재단 홈페이지(http://www.kinds.or.kr)에서 검색한 사건관련 신문 및 잡지 기사
러시아 Natrional News Service 홈페이지(http://www.nns.ru) 검색 기사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