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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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계획사업

주제유형
사업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모자보건법」


배경

1953년 한국전쟁의 휴전과 더불어 당시의 사회적 불안정과 북한동포의 월남 및 출산붐으로 인한 인구의 증가현상은 출산조절의 필요성을 유발시켰으나 당시의 완고한 봉건적 사상으로 인하여 가족계획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1958년에 들어서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원조를 얻어 〈지역(농촌)사회개발계획〉이 수립되었는데 이 계획 속에 가족계획사업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 계획은 1961년박정희 군사정부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되었다.


내용

가족계획사업은 1961년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급격한 인구증가가 경제사회발전에 저해요인이 된다는 인식 하에서 시작되었다. 1961년국가재건최고회의 결의에 따라 가족계획사업이 국가시책으로 채택되었고 동시에 피임약제 기구의 국내생산과 수입금지조치가 해제되었다. 이 같은 결정에 따라 1962년 당시의 우리나라 인구증가율 2.9%를 〈제1차 5개년 계획〉(1962년∼1966년)의 목표 연도 말에는 2.5%로, 그리고 〈제2차 5개년계획〉(1967년∼1971년)의 목표 연도 말에는 2.0%로 둔화시킨다는 방침이었다. 1963년 보건국 모자보건과에 가족계획계가 설치되면서 본격적인 가족계획사업이 시작되었다.


가족계획사업은 정부가 외국 정부의 지원 하에 유관기관을 설치하여 적극적인 협력 하에 사업을 추진하였다. 1965년 보건사회부 모자보건과 산하에 가족계획 조사 평가반을 두고 있었는데 1968년 7월 12일자로 스웨덴 정부와의 가족계획 분야 기술 협력에 관한 기본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국립가족계획연구소로 전환되었다. 이연구소는 인구 및 가족계획에 관한 조사 연구 및 사업 효과의 측정, 일선 가족계획 요원의 전문적인 훈련 사업을 했다. 또한 대한가족계획협회도 가족계획사업의 저변확대에 기여하였다. 대한가족계획협회는 계몽활동, 대인 교육 및 대중 매체 활용 홍보, 피임 방법 임상 연구, 시술 의사 보충 훈련 등 가족계획사업을 지원 추진하여 모자보건을 증진시키는데 공헌했다.


1. 제1차 5개년계획기간(1962∼1966) : 피임보급체계의 확립
1962년에 전국 183개의 시·군지역의 보건소에 가족계획상담소를 병설하였고, 1964년에 는 하부조직을 강화하기 위하여 1,473개 읍·면에 가족계획 계몽요원을 배치하여 가족계획에 대한 홍보계몽 및 피임보급을 위한 가정방문과 집단지도를 담당토록 하였다. 1966년에 무의지역주민에 대한 피임보급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가족계획 이동 시술단을 설치 운영하였다.


2. 제2차 5개년계획기간(1967∼1971) : 지역사회중심 피임보급의 기반조성
이시기에는 가족계획사업을 실시하기 위한 각 단체의 설립을 통해 피임보급의 기반이 조성되었다. 1961년에 민간단체로 창설된 대한가족계획협회는 피임보급을 위한 자체진료소 운영, 홍보계몽 및 훈련 사업을 전담하였고 1968년에는 전국 리·동단위에 총 26,000개의 어머니회가 조직되었고 국립가족계획연구소가 1971년에 연구·평가사업의 객관성 유지와 전문 인력의 확보를 위하여 가족계획연구원으로 전환되었다.


3. 제3차5개년계획기간(1972∼1976) : 특수집단을 위한 선별적 사업 전개
농촌형 사업추진방식을 탈피하여 1970년부터는 도시지역의 특성에 부합되는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1973년에는 「모자보건법」을 제정했고 1974년에는 병원가족계획사업, 영세민지역주민 사업, 학교 정규교육을 통한 인구교육을 실시했다.


참고자료

여성부 〈한국여성정책 관련 사료 체계화 방안에 관한 연구〉 2003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 30년》 1991


집필자
장정순(숭실대학교 사회적기업가 아카데미 책임연구원)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