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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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공업종합육성계획

주제유형
정책/제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중화학공업육성시책〉
「철강공업육성법」
중화학공업화 정책선언


배경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 육성 시책에 따라 6대 기간산업으로 선정된 철강공업 진흥을 위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주요 기초자재의 공급역할을 담당하는 기초산업인 철강공업을 합리적으로 육성·지원하기 위하여 1970년 1월 1일 제정된 「철강공업육성법」과 대통령 지시에 따라 철강산업 육성을 위한 시행계획이 수립, 시행되었다.


경과

1967.07 종합제철소 입지를 포항으로 결정
1968.04.01포항종합제철㈜ 설립
1970.01.01 법률 제2181호 「철강공업육성법」 제정
1973.01.12 연두기자회견에서 중화학공업시대 선언
1970.04.01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착공
1973.07.03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종합 준공(조강연산 103만톤)
1976.05.31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종합 준공(조강연산 260만톤)
1978.12.08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종합 준공(조강연산 550만톤)
1981.02.08 포항제철소 4기 설비 종합 준공(조강연산 850만톤)
1983.05.25 포항제철소 4기 2차 설비 종합 준공(조강연산 910만톤)
1985.12.05 광양제철소 1기 설비 착공
1987.05.07 광양제철소 1기 설비 종합 준공(조강연산 1,180만톤)
1988.07.12 광양제철소 1기 설비 종합 준공(조강연산 1,450만톤)
1990.12.04 광양제철소 1기 설비 종합 준공(조강연산 1,750만톤)
1992.10.02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 종합 준공(조강연산 2,080만톤)


내용

1970년 1월 1일 제정된 「철강공업육성법」과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제1단계 사업으로 포항제철을 조강 연간생산량 규모 850만톤으로 확장하고, 제2단계 사업으로 최종규모 1,200만톤의 제2공장건설에 착수하며, 이와 병행하여 종합특수제강공장과 제철연관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시행계획이 수립, 시행되었다. 


국내 최초의 종합제철소 건설계획은 1962년 정부가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립하면서 부터이고, 1961년 제1차5개년계획 수립기간에 철강자문위원회를 설치하여 연간생산량 30만톤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설계획을 수립하여 미국의 Blaw Knox, Westinghouse, Kaiser Steel 및 서독과 프랑스의 몇 개사를 상대로 국제입찰을 실시하였으나 차관제공자가 없어서 계획이 성사되지 못하였고, 이후 서독의 Demag, Krupp, GHH 3사로 구성된 DKG조합체와 다시 교섭하였으나 규모가 너무 작고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실패하였으나, 생산규모를 50만톤 규모로 키우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였고 세계은행(lBRD)이 건설의 타당성을 인정함에 따라 1966년 12월 미국, 프랑스, 서독, 영국, 이탈리아 등 5개국 8개사로 구성된 '한국국제 철강연합'(KISA; Korea lnternational Steel Associates)이 구성되었고, 1967년 10월 20일 KISA가 연산 60만톤 규모의 공장을 짓는 데 필요한 외자 116백만불을 200일 내에 조달하며, 시일 내에 외자조달에 실패하면 계약을 무효화하는 내용의 종합제철소 건설계약이 체결되었으나 차관제공자가 없어 무산되었다. 


정부는 종합제철소 건설의 강력한 추진을 위하여 사업주체로 국영기업체 형태인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POSCO)를 설립하였고, 한일국교 정상화에 따른 청구권자금 73.7백만 불과 경제협력자금으로 수출입은행에서 50.0백만 불 공여의 차관협정이 체결되고, 일본의 야와타제철, 후지제철, 니혼강관 등 3사로부터 기술은 제공받음으로써 종합제철소 건설이 시작될 수 있었다. 


1970년 4월 1일 조강 연산 103만 톤 규모의 종합제철공장 건설에 착공하여 1973년 7월 3일 포항제철소 1기 설비가 준공되고, 1985년 12월 5일 광양제출소 건설에 착공하여 1987년 5월 7일 광양제철소 1기 설비가 준공되었으며 1992년 10월 2일 포항제철소 및 광양제출소 조강 연산 2,080만 톤 규모의 종합 준공으로 대역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철강산업이 우리나라의 기반산업으로 본격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 박정희 대통령 포항 종합 제철 공장 기공식 치사 (1970.4.1) >

박 태준 사장 이하 회사 간부, 종업원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내외 귀빈 여러분! 우리는 지금 공업 국가 건설을 위해서 전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공업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되겠고, 또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특히 선행되어야 될 몇 가지 기간산업이 있는 것입니다. 즉, 오늘 이 자리에서 기공식을 보게 되는 철강 공업이라든지 또는 시멘트 공업, 석유 공업, 전력의 개발, 석탄, 비료 등 근간이 되는 중요한 산업들을 우선해서 개발해야만 공업이 발달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그 중에서도 철강 공업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야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기계 공업, 조선 공업, 자동차 공업 등을 육성함에 있어서, 또한 모든 건설 사업을 촉진함에 있어서, 철강 공업은 가장 근간이 되는 산업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군수 산업을 육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철강 공업을 우선적으로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지난 1962년부터 8,9년 동안 꾸준히 종합 제철 공장 건설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철강 공업이라는 것은 워낙 자금이 방대하게 드는 것이고 또 기술이 뒤따라야 되며,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이 제철 공장에서 나오는 철강재의 생산 원가가 국제 시가와 맞먹을 수 있도록 저렴하게 생산되어야만, 이에 뒤따르는 연관 산업의 제품들을 싼값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그간 정부는 미국의 저명한 회사들과 직접 교섭을 해 봤고, 이것이 잘 되지 않아서 독일의 ‘데마그’라든지 기타 큰 기업체들과 교섭도 해 봤으나, 역시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다음에는 경제 협의체‘ECOCK’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과 교섭을 해서 상당한 정도까지 추진되어 오다가, 이것 또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서 결국은 작년도에 일본 측과의 교섭에서 최종적으로 합의를 보는 등 여러 고비를 넘겨 종합 제철 공장을 건설하게끔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공장은 앞으로 내, 외자를 합쳐서 약 2억2천백만불,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670억원 정도의 투자를 하게 되고 앞으로 3년간의 건설 기간을 소요로 하여, 모든 것이 순조롭게 추진되면 73년 여름에 가서는 약100만톤 규모의 제철 공장을 완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공장이 완공된 다음에도 우리는 앞으로 계속해서 2백만톤, 3백만톤 규모로 시설을 확장해 나가지 않으면 국내 수요를 충족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봅니다. 


내가 지금 추측하기로는 우리나라의 공업이 발전해 나가는 추세를 보아서,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후반기쯤 가서는 약 1,000만톤 정도의 철강재 생산 능력을 가져야 될 것이고, 또 그러한 공장들이 계속 건설돼 나가야 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느 책에서 본 바로는 2차 대전이 시작되기 전의 일본의 철강재 생산 능력은 불과 300여만톤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들은 9천만톤의 철강재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불원 1억톤을 돌파할 세계 2위 내지 3위 정도의 대철강재 생산 국가로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서둘러서 이 철강재 공업을 빨리 육성해야 되겠고, 그렇게 함으로써 기계 공업, 조선 공업, 자동차 공업 기타 국내 건설 산업, 또한 군수 산업 등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공장 건설을 위한 여러 가지 대외적인 교섭이나 절충을 위해서 오랜 시일을 소요했기 때문에, 최종적인 확정이 늦어지고 오늘에야 비로서 공장의 기공을 보게 되었지만, 정부로서는 벌써 67년도 여기에 따르는 지원 시설 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는 바와 같이, 방대한 항만 시설이라든지, 먼 거리에서 이 공장 지대가지 공업용수를 끌어오기 위한 댐 건설과 송수 시설이라든지, 또는 여기로 들어오는 인입선 철도, 기타 300만평 가까운 공장 부지의 조성 등 여러 가지 사업을 그 동안 남이 모르는 사이에 추진해서, 오늘 정도의 진전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밖에도, 이 본공장 외에 연관 산업 공장들을 건설하기 위해서 약 100여만평의 부지를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앞으로, 이런 모든 시설들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면, 이 포항 지대는 우리나라의 울산과 맞먹을 수 있는 공업의 일대 중심지가 될 것이고, 특히 여기 새로이 건설하고 있는 항만 시설을 장차 연간 1,000만톤 이상의 하역 능력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항구가 되리라고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 즉 대외적인 교섭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토지를 매상하는 문제, 또는 이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다른 데로 이주시키는 문제, 항만 건설을 위한 여러가지 기술적인 문제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와 애로점이 많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장 이하 회사 간부, 기술자, 종업원 여러분들이 꾸준히 노력으로 오늘 벌써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기초 지원 시설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들의 노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치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본격적인 공장 건설을 시작하는 여러분들에게는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어렵고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장 이하 전사원들이 일치 단결해서 우리 민족의 하나의 역사적 사업이 될 수 있는 이 포항 종합 제철 공장을 여러분들 손으로 완공한다는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이 공장을 훌륭한 공장으로 건설해 주기를 부탁해마지 않습니다. 특히, 오늘 이 자리를 빌어 그 동안 이 공장 건설에 대해서 여러 가지 협조를 많이 해 주신 이 지방 주민 여러분과 또 도지사, 시장, 군수 등 유관 기관의 여러분의 노고에 대해서도 아울러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앞으로도 이 공장이 예정대로 준공이 되자면 이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회사 당국은 물론이거니와, 현지 주민 또는 기관, 도, 여기 주둔하는 해병 사단 기타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협력을 해 주어야만 될 줄 압니다. 물론 정부로서도 이 공장은 가장 관심이 많고 또 우리가 역점을 들인 사업이기 때문에, 최대한의 지원을 하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국가기록영상관,〈1973년 대한뉴스 제939호 “집념의 승리-포항종합제철소 준공 및 발전”〉(http://film.ktv.go.kr/tma/index.jsp?menu=4&first=99&videoID=10797&clipID=0&find=all&word=포스코35年史)
포스코박물관http://museum.posco.co.kr/)
포스코 (http://www.posco.co.kr/ )
한국형경제정책연구소,《한국형 경제건설》 1권~7권, 2005
랜덤하우스중앙,〈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한국경제정책 30년사》, 2006
산업연구원,《한국의 산업정책》, 1989
한국개발연구원,《한국경제의 역사적 조명》, 1991
한국개발연구원,《한국경제반세기》, 1995
한국개발연구원, (http://www.kdi.re.kr)
산업연구원(http://www.kiet.re.kr)


집필자
이창운(한국산업기술평가원 선임연구원)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