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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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육성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자동차공업 육성에 대한 대통령 지시〉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 육성 시책〉


배경

〈중화학공업화 육성정책〉에 따라 연 3만대 수준의 내수중심 자동차 생산시스템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1972년 ‘군소 조립공장 차량조립불허 및 폐쇄조치’로 자동차조립업체를 정비하고, 1973년 1월 18일 국산화율 제고를 위해 〈자동차공업육성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의 핵심은 1973년 말까지 자동차 국산화율 목표를72%까지 달성한다는 것이다.이어 1973년 9월 6일 자동차공업 육성에 대한 대통령 지시, 1974년 5월 7일 〈장기 자동차공업 진흥계획〉등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자동차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하였다.


경과

자동차산업의 시작은 1944년 기아자동차의 전신인 경성정공의 설립을 기원으로 한다. 이후 1946년 현대자동차의 전신인 현대자동차공업사, 1957년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공업, 1962년 쌍용자동차의 전신인 하동환자동차공업이 설립되면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구도가 갖춰졌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보호를 위해 1962년 「자동차공업 보호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외산자동차 및 부품의 수입이 완전히 금지되었다. 1964년에 〈자동차공업 종합육성계획〉과 1969년 〈자동차공업육성기본계획〉이 발표되었고 이로써 자동차 및 주요부품의 국산화를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자동차공업의 국산화율을 높이는 노력은 계속되어 현재의 자동차생산 강국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내용

1. 1963년 자동차공업 일원화
1963년 자동차공업의 일원화가 추진되었다. 이는 자동차 생산의 비용절감을 우선으로 하여 자동차의 생산표준을 제시하여 천편일률적인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내용이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우선 승용차는 영업용·자가용을 불문하고 한 종류만 생산하되 외화절약을 하기 위해 연료가 적게 드는 소형차로 한다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표준차를 정하여 모델의 부분적 개량은 허용하되 모양 전체는 변경하지 않도록 하였다. 또,중대형차는 유류(油類)절약을 하기 위해 디젤엔진을 탑재하고 차형은 규모별로 규격화하되 될수록 모델의 수를 적게 하고 모델은 자주 바꾸지 않도록 하였다. 부속품은표준화해서 공용(共用)부품의 수를 많게 하며, 자동차 제조공장은 한 공장만 허가하여 일정한 규모가 될 때까지 보호 육성한다는 것이다.



2. 1964년 자동차공업종합육성계획
자동차공업의 일원화에 대한 기본방침이 수립된 다음 해인 1964년〈자동차공업육성계획〉이 발표되었다. 이는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연도별 국산화율의 목표치를 정하고, 그 달성도를 공개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국산화 목표 달성을 위해 국내 자동차 부품공업을 육성하고,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75개 부품업체를 지정하여 금융지원 등의 지원정책을 펼쳤다. 이에 자동차 조립업자는 정부가 제시한 국산화 목표 달성을 위해 진력하게 되었다.



3. 1969년 자동차공업육성기본계획(자동차 및 주요부품의 국산화계획)
정부는 자동차(승용차) 국산화를 위해 1972년까지 국산화율 100%달성을 목표로품질의 국제화, 생산성 향상 및 가격의 국제화를 위해 자동차 부품공업을 일원화한다는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동시에 자동조립공장과 부품공장을 완전 분리하여 육성한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조립공장은 엔진가공공장과 보디조립공장만 설립하고 엔진부품, 변속기(變速機), 차축(車軸), 조향장치(操向裝置), 전장품(電裝品), 제동장치(制動裝置), 보디 부품 등의 부품은 전문부품공장에서 구입해서 사용하도록 한다.

4. 1973년 자동차공업 육성에 대한 대통령 지시
자동차공업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관심은 지대하였다. 이에 자동차 공업 육성에 대한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있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자동차 공업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화학공업화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공업이므로 1980년대 고도성장의 주역을 담당해야 한다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시설의 중복 투자를 피하고 개개공장의 근대적이며 경제적 생산체제를 확립하여 국제 경쟁력을 갖춘 자동차 공업을 육성해야함을 언급하였다. 이는 자동차 공업의 발전방안에 대한 중요한 제시였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현실화 방안도 지시하였다. 첫째, 1975년까지 완전 국산화를 목표로 구체적 육성계획을 작성, 추진할 것, 둘째, 차종 및 차형을 단순화할 것과 유류소비의 절약을 도모할것, 셋째, 부품생산과 조립생산부분은 분리하여 육성하되 기존공장을 활용할 것, 넷째, 부품공장은 외국과의 합작 등을 통해 국제규격의 공장을 건설하여 수출할 수 있는 우수부품을 생산할 것과 공장입지는 창원기계공업기지 내로 할 것 등이다.

5. 1974년 장기 자동차공업 진흥계획
1973년 대통령 지시에 의해 〈장기자동차공업진흥계획〉이 확정되었고, 1973년부터 시작한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포함되어 국가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주요 내용은 첫째, 1975년까지 승용차 국산화율 95% 이상 완전국산화, 둘째, 1981년말 7만5천대 수출을 목표로 1천500cc 이하 소형차 고유모델 개발, 셋째, 승용차 생산가는 2천 달러 내외로 하고 생산대수는 연간 5만대 이상, 넷째, 부품공업육성을 위해 조립공장과 부품업체를 분리하고 엔진 및 차체 이외의 부품에 대해서는 1부품 1공장의 수평분업체제 유지한다는 것이다.


참고자료

삼성화재교통박물관 (http://www.stm.or.kr)
한국형경제정책연구소,《한국형 경제건설》1권~7권, 2005
랜덤하우스중앙,《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 한국경제정책 30년사》, 2006
산업연구원,《한국의 산업정책》, 1989
한국개발연구원,《한국경제의 역사적 조명》, 1991
한국개발연구원,《한국경제반세기》, 1995
한국개발연구원 (http://www.kdi.re.kr)
산업연구원 (http://www.kiet.re.kr)


집필자
이창운(한국산업기술평가원 선임연구원)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