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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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민법개정

주제유형
정책/제도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우리나라의 대가족제도는 개인의 자유활동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바 크므로 이를 부부중심의 소가족제도로 전환하기 위하여 현행 민법상 임의분가와 강제분가의 양제도 외에 새로이 법정분가제도를 창설하여 차남 이하의 자는 혼인하면 법률상 당연히 분가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또 「민법」의 시행일 전의 법률행위로 인한 부동산에 관한 물권의 득실변경은 「민법」 시행일로부터 3년내에 등기하지 아니하면 그 효력이 상실되도록 규정되어 있는 바, 이 등기기간을 2년 더 연장하려는 것이었다.


배경

실제로 이 제1차의 개정에는 일정한 전사(前史)가 있다. 최근에 발견한 자료에 의하면, 법무부가 1962년 7월 이전에 ‘한국민사법연구회’에 “현행민법 중 개정을 요하는 부분”에 관한 의견을 구한 듯하다. 이에 응하여 그 연구회는 1962년 7월 13일부터 그 달 25일까지 4차에 걸친 회합을 가졌고, 그 달 31일의 정기총회에서 ‘민법개정안의 성안보고 및 채택’이 있었다. 이 ‘민법개정안’은 재산편 7개 항목, 신분편 13개 항목의 도합 20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제10항이 바로 법정분가제도의 도입을 제안한 것이었다. 아마도 이 20개의 개정제안 중에서 이것만이 법무부에 의하여 입법화 된 것으로 추측된다.


내용

민법제정 시행후 최초의 민법개정은 법정분가제도를 규정한 1962년 12월 29일 법률 제1237호이다. 즉,「민법」은 본래 분가에 관한 임의분가(제788조제1항)와 강제분가(제789조)만을 규정하였었는데, 이 개정으로 제789조제1항을 신설하여 “가족은 혼인하면 당연히 분가된다”고 규정하면서 본래의 강제분가에 관한 규정은 동조의 제2항("호주는 직계비속아닌 미성년자로서 독립의 생계를 할 수 있는 가족을 분가시킬 수 있다")으로 하였다.


법정분가를 인정하게 된 이유로서는 첫째, 사회생활의 현실이 가족제도로부터 부혼(夫婚) 내지 친자중심의 소가족제도로 바뀌고 있는 생활양식을 고려하였고, 둘째 현실가족과 관념상 호적상의 가족을 되도록 부합시키고자 하였고, 셋째 국민일반이 임의분가제도에 대하여 비교적 무관심한 결과 호적상의 가족과 현실의 가족의 괴리가 점점 더하여지는 추세에 있었고, 넷째 호적의 소재지(본적지)를 고정시킴으로써 일어나는 지방색을 되도록 불식하고자 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이 개정의 경과를 보면,5·16군사정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법제사법위원회는 ‘본적’제도를 없애는 방안을 관계자들에게 연구시켰다. 그러나 약 1년 반의 연구 끝에 얻은 결론은 우리 나라 실정으로는 아직 호적 내지 본적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하여 위의 민법개정을 하는데 그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3·8이북 출신자들의 ‘가호적(假戶籍)’을 ‘호적’으로 간주하기로 하고, 호적법상 인정되어 있으면서도 사실상 그 절차가 용이하지 않았던 ‘전적(轉籍)’을 사실상 수월하게 하기로 하였다.


참고자료

곽윤직《민법주해Ⅰ》박영사, 1992
김증한《한국민법의 발전》서울대학교 법학(제24권 2․3호), 1983


집필자
현대호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