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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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전의 제정

주제유형
정책/제도
  • 주제설명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민법전의 제정은 일정하에서 의용되던 일본민법전에 대체하여 재산관계와 가족관계를 규율할 새로운 민법을 제정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적인 법생활의 안정을 기하려는 것이고, 제정 이후 9차에 걸친 개정은 민법의 현실규범력을 높이고 민법전을 근대화하는 일련의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배경

1910년 한국을 식민지화 한 일본은 곧 그의 법률을 시행케 하였다. 즉 일본정부는 1910년 8월 29일의 ‘조선에 시행할 법령에 관한 건’이라는 긴급칙령을 발포하여 일제하의 한반도의 법률은 조선총독부령의 형식으로 제정할 수 있다는 것과 일본의 법률 중에서 한반도에 시행할 것은 칙령으로 지정한다는 것을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2년 후인 1912년 3월에 칙령 제7호로 「조선민사령」을 제정하여 시행하게 하였는데, 이 「조선민사령」이 일제 아래에서의 민사에 관한 기본법이며, 이것에 의하여 일본의 민법전과 각종의 특별법 및 부속법이 한반도에 의용되게 되었다. 


1945년 8·15 해방으로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게 되고 미군정이 수립되었지만, 법체계의 근본적인 변경은 없었다.대한민국의 수립 이후에 일본법령의 폐지에 대한 국민적 요망에 따라서 민법전의 제정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내용

1. 민법전의 제정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헌법」이 제정·공포되고, 이어서 정부가 수립되자 정부는 곧 법전편찬사업의 착수를 위하여 우선 같은 해 9월 15일 대통령령 제4호로서 「법전편찬위원회직제」를 공포하고, 조·야의 법조인과 소수의 법률학교수를 위원에 위촉하였다. 실무자를 중심으로 발족한 동위원회가 민법전의 기초에 착수한 것은 1948년 12월 15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로 초안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먼저 그 기초로서《민법전편집요강》과 《민법친족상속편편집요강》을 작성하였으며, 이것을 토대로 하여 구체적으로 초안작성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한국전쟁의 돌발로 이 사업의 일시적 중단을 초래하였으나, 전쟁 중의 어수선한 피난생활 속에서도 사업의 계속에 노력하여 마침내 1953년 7월에 초안의 기초를 끝냈다. 이에 소요된 기간은 4년 7개월이 된다. 이 법전편찬위원회의 민법전초안은 1954년 10월 26일 정부제출법률안으로서 국회에 제출되었다. 국회에서는 이 초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넘겼는데, 동위원회는 다시 민법안심의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초안을 예비심사케 했다. 소위원회는 각 위원이 분담해서 1957년 9월에 예비심사를 완료했다. 


소위원회의 수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본회의에 회부되었다. 국회본회의에서 다시 상당한 수정을 받은 후에 통과된 초안은 1958년 2월 22일에 법률 제471호로서 공포되었다. 공포된 민법전은 그의 부칙 제28조에 의하여 196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으며 이것이 현행 민법전이다. 민법전은 총1139개조로 되어 있었으며, 그 중 본문은 1111개조이고 나머지 28개조는 부칙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법전의 편별을 총칙·물권·채권·친족·상속의 5편으로 하였고,
둘째 민법의 법원은 법률·관습법·조리의 순에 의하도록 하였으며,
셋째 물권의 종류를 점유권·소유권·지상권·지역권·전세권·유치권·질권·저당권으로 하였다.
넷째 채권의 목적·효력·소멸 등에 관하여 정하도록 하였으며,
다섯째 친족의 범위·호주와 가족·혼인·상속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하도록 하였다.


초안작성과 그의 심의 등에 있어서는 독일민법전을 비롯하여 많은 외국의 민법전을 참고로 하였다고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볼 때에 근본적으로는 일본민법을 기초로 하고 있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즉, 재산법에 관하여는 물권법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일본의 민법학에 의하여 밝혀진 일본민법의 결함 내지 단점을 그들의 이론에 비교적 충실하게 개정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정에 있어서는 일본민법의 프랑스민법에 유래하는 제도를 많이 없애고 그에 갈음하여 독일민법 또는 같은 계열에 속하는 스위스민법·채무법에서 많은 제도와 규정을 따오고 있다. 그 결과 프랑스민법과 독일민법 제1초안을 모범으로 삼았던 일본민법에 비하여, 우리 민법은 훨씬 독일민법에 접근하고 있다. 이는 일본민법이 주로 19세기의 개인주의적인 법사상과 사회사상을 담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 민법은 20세기의 보다 새로운 이론과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한국민법의 성격은 재산법에 있어서는 일본민법과 독일민법을 계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가족법과 상속법의 영역에서는 일본민법이나 다른 근대민법의 영향이 매우 적다. 이는 그 제정에 있어서 현대의 민주적인 가족법과 상속법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길을 택하지 않고서 우리 나라의 전통적 관습과 민주주의 이념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주로 노력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2가지, 즉 전해 내려온 관습과 민주주의 이념을 적당히 타협케 하는 데 그친 감이 있으며 많은 문제를 품고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가족법과 상속법의 분야에서는 새로운 시대사조를 흡수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소극적이어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과 같은 경과를 거쳐서 성립한 민법전은 이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일본민법이 상당히 잘 갖추어진 법전으로 평가되고 있는 만큼 그것을 모범으로 하여 그의 불비점을 보완해서 제정된 우리 민법도 일본민법에 비하여 별로 손색이 없는 것이라고 일응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하던 문턱에서 외침을 받아 식민지로 전락하는 불행을 겪었으나 침략국의 패망으로 새로 탄생한 나라 따라서 근대사법에 관한 이렇다 할 학문적 유산을 갖고 있지 않은 나라로서는 동 사업은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다.


2. 민법전의 개정
민법전은 제정 이래 9차의 걸친 개정이 있었다. 이 중 2차에서 4차까지의 개정은 부칙에 관한 개정이었다. 본문에 대한 개정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1차 개정은 가족이 혼인하면 당연히 분가하는 법정분가제도를 신설하였다. 

둘째, 5차 개정은 친족·상속편의 개정이었다. 셋째, 6차 개정은 민법전의 재산법에 대한 최초의 개정이었다.

셋째, 7차 개정은 친족·상속편 전반에 걸치는 대폭적인 개정이었다. 

넷째, 8차 개정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등에 따른 친족·상속편 등에 대한 개정이었다. 

다섯째, 9차 개정은 헌법이념과 시대변화에 따라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불합치결정에 따른 가족법에 대한 개정이었다.


참고자료

곽윤직《민법총칙》박영사, 2006
법제처《대한민국법령연혁집》


집필자
현대호(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