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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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헌법

주제유형
정책/제도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일제식민지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정부를 수립함에 따라 헌법의 제정이 요구되어 국회는 1948년에 「헌법」을 제정하였다.


배경

우리 나라의 헌정사는 통상 1948년 제헌헌법부터 시작한다. 우리 나라는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로부터 3년 동안의 미군정기를 거쳐 1948년에야 비로소 「헌법」을 제정하였다.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여 5월 31일 198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역사적인 제헌국회가 개회되었다. 제헌국회는 헌법기초위원회를 조직하여 곧바로 헌법제정 작업에 착수하였다. 6월 3일부터 유진오의 헌법 초안을 원안으로, 권승렬의 초안을 참고안으로 하여 토의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의원내각제와 양원제를 골격으로 하는 헌법초안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승만과 미군정당국이 대통령제를 주장함에 따라 대통령제 (임기 4년, 1회 중임 가능)와 단원제국회 및 국무총리제를 채택한 제헌헌법이 완성되어 7월 17일 공포되었다.


내용

헌법초안을 만들기 위해서 구성된 헌법기초위원회는 유진오 원안과 권승렬 참고안을 중심으로 토의를 진행했는데, 두 안은 통치구조의 내용면에서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헌법기초위원회의 토의과정에서 단원제국회의 대통령제와 위헌법률심사를 위한 헌법위원회 설치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선 이승만 국회의장과 그 동조 세력들 때문에 타협과 절충이 불가피했다. 결국 이승만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단원제국회와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적인 국무원 및 국무총리제가 가미된 절충안이 만들어져 6월 23일 국회본회의에 상정되었다. 국회본회의에서 처음에는 헌법초안에 대한 활발한 토의가 있었지만 나중에는 그해 8월 15일까지는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국내의 정치 사정 때문에 빠른 속도로 토의를 진행해 7월 12일에는 제3독회를 모두 마치고 헌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1948년 7월 17일 대통령제와 단원제국회를 주요골자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적 「대한민국헌법」이 공포·시행되기에 이르렀다.


「헌법」의 제정이유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이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이 헌법을 제정하려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제정헌법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회를 단원제로 하였다.
둘째, 정부형태를 대통령중심제로 하였다.

셋째,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였다. 

넷째, 대통령·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등의 직무수행에 관하여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결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섯째, 탄핵사건을 심판하기 위하여 탄핵재판소를 설치하였다.

여섯째, 대통령과 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하였다. 

일곱째,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하고, 1차중임을 허용하였다.

여덟째, 대법원장인 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도록 하였다.

아홉째, 법률의 위헌심사권을 헌법위원회에 부여하였다.


제1공화국 헌법은 그 시행 초기부터 정치생활의 큰 흐름을 규범적으로 주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세력에 의해서 무시 내지 농락당하는 중대한 시련과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가장 핵심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은 1인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을 꾀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이를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한민당 중심의 야당이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을 집요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정치적 갈등과 대립의 소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1공화국의 헌정은 ‘힘의 불법통치’에 의해서 「헌법」의 규범적 효력이 완전히 무시되고 「헌법」이 하나의 명목적이고 장식적인 역할밖에는 하지 못하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더욱이 1950년의 한국전쟁은 헌정의 민주발전에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제1공화국 헌법은 2차례의 무리한 개헌을 경험하면서 그 규범적 헌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제1공화국의 ‘힘의 통치’를 정당화시켜 주는 구실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참고자료

법제처《대한민국법령연혁집》
허 영《한국헌법론》박영사, 2005


집필자
현대호(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