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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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각화재사고

주제유형
사건/사고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발생원인

불은 프로판가스를 사용하고 있던 호텔로비 쪽의 커피숍에서 발화하였다. 카운터에는 프로판가스 화덕이 있었는데, 화재가 발생한 이날 아침에는 가스 용기 이외에 예비로 20kg 짜리 용기를 그 옆에 놓아두었다. 화인은 예비용기의 가스를 잘못 방출하여 인화되었거나, 가스가 많이 새었거나, 안전밸브가 열려 있었는데도 불 가까이에 그대로 놓아 두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내용

1. 시기
1971년 12월 25일 오전 9시 50분 발화하여 오후 5시 30분경 진화 

 

2.사고전개
불이나자 연기냄새와 종업원들의 화재 경보소리에 자리를 차고 일어난 호텔 손님들은 피난하려 했으나, 피난할 수 있는 곳은 복도일 뿐 계단은 연기와 열로 충만하였다. 저층부에 있던 사람들은 안전하게 뛰어내리거나 시트로 끈을 연결하여 내려오기도 했으며, 창가에서 구조를 기다리기도 했다. 또한 옥상에서 헬리콥터로 구조된 사람들도 있었으나, 다른 고층부에 있던 사람들은 절망적이었다. 7층에서 일하던 한 종업원은 복도에서 연기냄새가 나는 것을 보고, 화재가 났다는 것을 직감하여 각 객실문을 두드려 손님들을 깨우고 난 뒤 계단을 통해 8층으로 올라가 호텔 뒤쪽의 7층 옥상으로 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살아났다. 이 사람처럼 50명의 종업원들과 손님들이 8층에서 호텔 뒤쪽 7층 옥상을 통해 구조되었다. 기타 많은 사람들이 질식하여 죽었으며, 호텔손님들은 시트로 끈을 만들어 동편의 벽을 타고 내려오려고 했다. 8층에 있던 2명이 이런 방법으로 피난하였다. 15층 한 손님은 시트로 끈을 만들어 14층으로 내려오고, 같은 방법으로 계속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렇게 하여 7층까지 내려갈 수 있었으며, 여기에서 소방원이 던져준 구명밧줄에 의해 안전하게 구조되었다. 옥상에서 헬리콥터로 구조를 받아 보려고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갔으나, 스카이라운지의 상태가 악화되어 여러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 군 헬리콥터는 구명줄을 이용하여 옥상에 올라있던 사람들은 구조할 수 있었다. 불행히도 이들 중 2명이 인근 고층건물 옥상의 안전지대에 도착하기 전에 떨어져 죽었다. 하층부에 도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절망의 상태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망에 질려 많은 사람들이 뛰어 내리다 죽어갔는데, 어떤 사람은 충격을 죽이기 위해 매트리스를 안고 뛰어 내리는 무모한 행동도 시도했다.


당시 서울시의 소방업무는 시경 소방과에서 담당하였지만, 치안국 소방과에도 소방업무 책임이 있었다. 서울시 소방구역은 대연각 호텔이 있는 중부지역을 비롯해 4개 구역으로 구분되며, 각 구역마다 본서가 있고 서장이 그 구역을 관장하였다. 서울시에는 24개의 파출소, 소방대, 그리고 4개의 소방서가 있으며, 소방서 밑에는 21개 소방파출소가 있었다. 하지만 소방장비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사다리 장비는 31m 고가사다리차 한대와 15m 고가차 3대뿐 이었다. 다행히 대연각호텔은 중부소방서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소방대의 출동은 빨랐다. 중부소방서가 전화로 화재신고를 받은 것은 이날 오전 10시 17분이였다. 불이 건물외부에서도 보일 정도로 확대되자 소방서에는 화재신고전화가 쇄도했다. 소방대원들이 도착하였을 때에 하부 3개 층은 이미 불이 붙어 있었으며, 상층에는 연기가 빽빽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얼마 후 21층에서도 불길이 보였다. 우선 소방대원들은 고가사다리로 건물 후방의 7층 옥상에 있던 사람들과 8층 이하 층에 있던 인원들을 구조하였다. 다음에 고가사다리차와 고가대를 건물 정면에 놓고 하층부 불길을 잡기 위해 11층에 집중적으로 물을 뿌렸다. 불길이 하층부에 휩싸였기 때문에 소방 및 인명구조 작업은 외부에서만 할 수 밖에 없었다. 화재신고가 있은 뒤 1시간도 채 못 되어 한국군과 미군의 헬리콥터 8대가 도착하였으며, 한국군 헬리콥터는 옥상 구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헬리콥터가 구명 선으로 창가에 나와 있던 사람들을 구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헬리콥터가 비행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지 못했으며, 연기로 시계가 불량하고 온도가 상승하여 위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화재진압에는 소방관 528명, 의용소방대원 113명, 경찰관 750명, 구청직원 400명, 군인 115명, 의료반원 30명이 동원되었다. 또한, 협조요청을 받은 미8군 소방대는 펌프, 물탱크장비를 동원 온종일 이 작전에 참가하였다. 길을 막고 서 있는 수천 명의 구경꾼들을 통제하는데 200여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 오후 5시 30분 이후에는 불길이 잡혔으나, 여열(餘熱) 때문에 7층 이상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저녁 8시부터 18시간에 걸쳐 철저한 희생자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다. 

 
3. 대책
만일 대연각호텔 화재가 휴일이 아닌 평일에 일어났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화재에 직면하게 되어 인명피해는 더 컸을 것이다. 정부당국은 서울시청에 화재대책본부를 설치했으며 시경에는 화재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는 한편 부상자들은 세브란스 병원 등 각 병원에 분산시켜 치료를 받게 했다. 건물 대표를 비롯하여 10여 명이 구속되었다. 이 화재는 존 길러민 감독의 재난영화 ‘타워링’(1974)의 모티브를 제공한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사건이었다. 이 사고 이래로 대형건물에는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참고자료

경찰청,《한국경찰60년사》, 2006


집필자
김보환(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