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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체력 검사제도

분야별 주제 및 주요내용 및 소개 테이블
주제유형 정책/제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중학교·고등학교 및 대학의 입학에 관한 임시조치법」공포 (법률 제681호)
「중학교·고등학교 및 대학의 입학에 관한 임시조치법 시행세칙」공포 (문교부령 제91호)

배경

1961년 8월 21일 군사정부는 교육개혁의 일환으로「중학교·고등학교 및 대학의 입학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공포하고, 동년 8월 24일에는 시행령을, 10월 23일에는문교부령 제91호로 시행세칙을 공포했다. 

이 법령에 의해 중·고등학교 입학전형제도에 대한 국가관리제가 실시되었다. 이에 따라 1962년부터 입시는 국가공동출제에 의한 국가 관리로 시행되고 필답고사의 출제범위가 전 교과로 확대되었으며, 체능검사를 점수로 계산해 입시성적 총점의 7분의 1로 하고 5등급으로 구분했다. 이와 함께 특기자 서류전형, 타 지방의 진학방지, 동일계 진학의 경우 특전불가 등을 원칙으로 필답고사의 배점은 175점, 체능검사 25점으로 총 200점 만점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국가고시제의 실시로 드러난 입시제도 개혁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가 바로 체능검사였다. 

이로 인해 수험생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체력관리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경과

학생체력검사제도의 실시는 입시과열 현상 등 몇 가지 측면에서 부작용도 불러 일으켰지만 이로 인해 많은 학생들의 체격과 체력이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초체력 증강을 위한 기본운동 종목이 널리 보급되어 운동을 생활화하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특히 입시위주의 교육이 학생들의 체력관리에 소홀했다는 점에서 이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으나 결국에는 입시과열 현상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각 학교에서 학생들의 체력 향상을 위해 제반환경을 개선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학생체력검사제도의 실시는 학교체육 정상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었다.

내용

체력장 제도의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스포츠 활동에 대한 이해와 이에 대한 습관과 태도를 기르게 해 스포츠의 생활화를 기하고 국민의 체위향상과 체육인구의 저변확대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었다. 즉, 학생들에 대한 체력검사를 통해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신체기능이나 운동능력을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체육활동을 하도록 해 국민모두의 체력을 증진하는데 있었다. 체력장제도는 1969년 시안을 마련하고 1971년부터 실시되었다. 


이 시안은 국제체력검사표준위원회에서 정한 기준과 종목을 대상으로 초·중·고교 99개 학교 학생들을 표집, 실시했고 그 결과를 가지고 토대를 만들었다. 1972년 5월 1일「문교부령」(제294호)에 의해「학교신체검사규정」이 개정 발표되었고, 1973년부터「대학입학예비고사령」 (제12조)에 의해 대학입시 내신을 위한 체력장제도를 실시했다. 그러나 1979년부터 일부종목을 변경하거나 취소해 100m달리기, 제자리 멀리 뛰기, 팔 굽혀 매달리기(남자는 턱걸이), 윗몸 일으키기, 던지기 등의 5종목으로 축소하고 그 평가방법도 상대평가로 전환되었다.


점수 및 등급부분은 5개 종목의 측정치를 종목별로 구분해 20점 만점의 절대기준 평가를 실시하고 5개 종목 전체를 합해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이 특급, 70∼79점이 1급, 60∼69점이 2급, 50∼59점이 3급, 40∼49점이 4급, 39점 이하가 5급 등 6개 등급으로 구분해서 등급별로 점수가 가산되었다.

참고자료

정천택,〈체력장 실시의 계획과 방향〉《체육》(41호) 대한체육회, 1969
윤남식,〈체력장제도 실시에 즈음하여〉《체육》(41호) 대한체육회, 1969
김종희,〈박정희 정권의 정치이념과 체육정책에 관한 연구〉한양대 박사논문, 1999

집필자

손환(중앙대학교 체육교육과 부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