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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노동력 중동파견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배경

중동으로의 노동력파견은경제적으로 한국과중동의이해관계가 합치되었기때문이다. 당시 중동은 1973년 석유파동으로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여, 자국의 국내 개발을 착수 하였으나, 필요한 인력과 기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특히 중동 대부분의 국가들이 착수한 자국 내 개발은 대개가 운송·통신·교육·의료·주택 등 사회간접자본시설들 이었는바, 이들은 모두 건설과 관련이 있었다. 당시한국은 수개의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건설사들이 대형 공사를 시공해냄으로서 경험을 축적하고 시공기술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건설 장비 또한 대규모로 보유하게 된 상태였다. 그러나 점차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확충되어 국내 건설 수요가 감소하자, 건설업계는 막대한 공급능력을 해외시장으로 내보내려는 돌파구를 찾던 시점이었다. 이러한 한국의 경제 상황과 중동의 경제 시장이 맞물리면서, 국내 기업들은 중동의 건설공사를 수주하였고, 많은 건설 기능 인력들이 중동으로 나가게 되었다.

내용

당시 국내 상황은 오일쇼크로 인해 외환이 부족하고 인플레 등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중동 건설 붐으로 많은 건설 기능 인력이 중동으로 파견 되자, 고용 안정 효과 뿐만이 아니라 외화 획득으로 국민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1973년부터 본격화된 중동인력진출은 급격히 확대되어 1975년에는 총 해외진출 인력의 30%가 중동 파견 인력이었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 수치가 80% 선을 넘기도 하였다. 이에 정부는 원활한 기능 인력 파견을 위해 1976년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중동경제협력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1978년에 노동청(현행 노동부)에 해외근로국을 신설하여 해외인력 수급의 합리적 조절, 해외현장 노사협조의 정착화, 해외취업 근로자 모집·송출 업무 개선, 근로자 사기 진작, 해외 취업 근로자 가족 지도 등의 시책을 펴나갔다. 


이후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세계 경기침체로한국 해외 인력진출의 주된 대상이었던 중동 산유국들이 원유의 감산, 가격 하락 등의 이유로, 건설계획을 축소 내지 폐지하였고, 공사대금 지불 지연, 준공공사 인수 지체 등은 물론 자국의 실업증가를 이유로 하여 외국 근로자 유입을 제한하는 등, 중동으로의 인력 파견은 매우 어려운 위기를 맞이했다. 게다가 중동 및 동남아 및 중국의 저임금 근로자 진출이 늘어나고 국내 근로자의 임금이 급증하자 해외 취업에 대한 매력이 상실되어, 해외 파견 근로는 위기에 봉착했다. 이 외에도 귀국 근로자들이 풍토병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해외 파견을 기피하는 풍조도 만연하였다.

역사적의의

1973년 10월의 중동전 재발 이후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으로 제1차 석유파동을 겪은 한국에게 중동 건설 파견은 중동진출을 통해 석유파동의 충격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국내 원유 가격이 폭등하자, 해외건설용역수입으로 통화량이 증가하는 등 불황의 계기도 되었다.

참고자료

조수종〈중동 건설 수출에 대한 재조명〉《한국중동학회논총》제8권, 한국중동학회, 1988, p.229

집필자
유성재(중앙대학교 법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