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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한국과학기술연구소육성법」

배경

196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분야 연구소는 국공립기관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으나 연구기기·시설·인력 등 연구환경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했고 각종 법적·제도적 규제에 따라 제대로 된 연구를 수행하기 힘들었다. 이 시기 본격화된 공업화에 따라 산업계의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연구소 설립의 필요성이 커졌는데, 1965년〈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존슨이 한국에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연구소 설치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한국과 미국의 공동사업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이 추진되었다.

내용

1. 설립 과정
1965년 미국 대통령 과학기술특별고문 호닉이 한국을 방문하여 연구소 설립의 타당성을 확인한 다음 한국 정부의 연구소 설치준비위원회와 미국 국제개발처(USAID)와 계약을 체결한 바텔기념연구소 전문가단의 협의를 통해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비영리 독립기관으로 연구소를 설치하며 연구용역을 통해 연구소를 운영한다는 원칙이 수립되었다. 1966년 2월 한미 양국정부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에 관한 사업계획 합의서〉를 조인하여 연구소 설립에 합의함에 따라 공식적으로 재단법인 KIST가 설립·공포되었다. KIST는 1969년 10월 준공식을 갖고 정상적인 운영단계로 접어들었으며, 1970년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연구기관으로 성장하였다.



2. 역두뇌유출 센터
KIST는 해외의 한국인 과학기술자들을 핵심연구자로 유치했는데, 이는 한국 두뇌유출의 흐름을 되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1960년대 중반까지 세계에서 두뇌유출이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였으며, 정부는 두뇌유출에 대한 현황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KIST가 주변의 우려와 달리 해외의 과학기술자들을 성공적으로 유치하자 정부는 그동안 해외 유학을 억제하는 소극적인 정책에서 정부 재원으로 해외 연구자들의 귀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했으며, 1970년대를 거치며 KIST를 모델로 한 정부출연연구소들의 설립과 함께 해외 한국인 과학기술자들의 귀국이 이어지면서 한국의 두뇌유출은 점차 완화되었다.



3. 정부출연연구소의 모태
KIST는 첫 번째 정부출연연구소로서 이후 설립되는 전문분야별 정부출연연구소의 모태가 되었다. 일부는 KIST 부설기관으로 설립된 뒤 독립했고 일부는 KIST의 조직과 인력이 분리되어 새로운 연구소가 되었으며 KIST와 직접 관련을 맺지 않은 연구소들도 연구소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KIST를 모델로 삼았기 때문에 KIST는 1970년대 정부출연연구소의 모태로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4.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재발족
KIST는 1980년말 정부출연연구소 통폐합 정책에 의해 한국과학원과 통합되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되면서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렸지만 198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으로 분리되어 재발족함으로써 본래의 이름과 첫 번째 정부출연연구소로서의 위상을 되찾았다. 1999년 정부출연연구소가 연구회체제로 개편되면서 KIST는 기초기술연구회에 속하게 되었다.

참고자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40년사》, 2006
과학기술처,《과학기술 30년사》, 1997
과학기술처·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 《과학기술처 출연연구기관 백서》, 1998

집필자
문만용(서울대학교 강사·과학사)
최초 주제 수정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