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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4자회담 출범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96년 4월 16일 제주에서 개최된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4자회담 방안이 합의되었다.
배경
북한은 1993년 NPT 탈퇴를 선언했고, 1994년 정전협정 무효화와 군사정전위원회 탈퇴를 선언하고, IAEA의 사찰 요구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맞서 북한은 1994년 6월 IAEA에서도 탈퇴를 선언했다. 당시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검토 등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황은 최고조에 달하였다. 따라서 이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했다.

경과
4자회담은 한국과 북한이 협정의 당사자가 되고, 6·25전쟁에 참여했던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증하는 형식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고, 종국에는 한반도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갖고 시작되었다. 
식량지원과 미북관계 개선에 4자회담의 필요성을 느낀 북한이 참여의사를 밝혔고, 남북한과 미국은 1997년 3월 뉴욕에서 공동설명회를 개최하고, 북한에 4자회담 제의 배경과 취지 등 기본구상을 설명했다. 이후 4자회담 개최를 위한 예비회담이 1997년에만 3회에 걸쳐 개최되었고, 본회담은 1997년 12월 9~10일에 제네바에서 제1차 회담이 개최된 것을 시작으로 후임인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8월까지 약 2년 동안 총 여섯 차례에 걸쳐 개최되었다.

내용
6차례 개최된 본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확보라는 4자회담 목표를 재확인하였고, 평화체제구축을 논의하고, 한반도 긴장완화를 논의하는 두 개의 분과위원회를 설치하였다. 6차 본회담에서 4자회담의 정례적 개최의 중요성에 인식을 같이 하고,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4자 실무그룹을 통해 7차 본회담 일정을 잡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와 미북 평화협정체결을 고집하면서 회담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4자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참고자료
외교부, 《동북아다자협력백서》, 2017.
김성한, 〈4자회담 제의의 배경과 전망〉, 《주요국제문제분석》, 국립외교원, 1998.
NK Chosun, 4자회담 관련 기사.
집필자
이대우(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17. 12. 26
최초 주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