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

분야별 검색

  • Home
  • 기록물 열람
  • 통합검색
  • 분야별 검색

외교

안보국방과 일본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배경
한국과 일본은 미국을 매개로 반공이라는 공동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배 유산으로 인해 양국이 안보 문제에 있어서 협력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히려 평화선 선언에서 알 수 있듯이, 양측은어업 수역, 영유권 문제 등으로 상호 갈등을 지속하였다.
내용
이승만정부는 미국의 지원 하에 한국이 중심이 되어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다자동맹기구를 결성하려고 시도했다. 625 이전 미국은 이러한 한국의 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민주화된 일본이 경제력을 회복하고 과거 일본 식민지를 경험했던 아시아 국가들과 과거사를 청산하여 외교 무대에 복귀하기를 기대했다. 전쟁 이전 이승만은 아시아판 나토에 해당되는 태평양동맹을 장개석총통과 키리노수상과 함께 추진했지만 이 구상은 미국의 반대로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이승만은 이 구상을 추진하면서 일본을 외교적으로 배제하려고 시도했다.

냉전체제 하에서의 북·일관계는 비정상적인 관계 혹은 잠재적 적대국 관계를 그 기본성격으로 하고 있었다. 일본은 한반도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두개의 정부 가운데 한국과의 관계를 한반도 정책의 중심적인 축으로 삼아왔으며 북한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는 백지상태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은 1965·일 기본조약으로 정형화되었다. ·일 기본조약3조에서 일본은 한국을 한반도에서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주목을 요하는 것은 ·일 기본조약에서 일본은 한국의 유일합법조항을 승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북쪽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북한정권의 실체를 완전히 부인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편 북한도 ·일 기본조약은 북·일 관계의 수립에 하등의 장애요소가 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북한은 1965년 한·일조약이 조인된 이튿날 발표된 정부성명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는 금번 ·일회담에서 박정희 도당과 일본 정부간에 체결된 조약과 협정들이 무효라는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는 이번 체결된 조약과 협정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끝까지 반대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또 김일성은 19721월 요미우리(讀賣)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 간에 국교가 수립되면 자연히 한일조약은 취소되고 말 것이다라고 발언함으로써 한일조약이 북·일 간 국교수립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함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1990년 이전의 북·일관계는 비정상적인 이국 간 관계의 범주에 머물러 있었다. 19909월 가네마루 방북과 3(자민당, 사회당, 노동당) 선언을 계기로 개시된 북·일 수교 교섭은 전후 북일 관계의 기조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킨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3당 선언은 일본의 대북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특히 35년간의 식민지배에 대해서 일본이 북한에게 정치적·도의적 차원에서 사죄하고 반성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자료
한국외교 40, 외교통상부, 1990

한국외교 50, 1948-1998, 외교통상부, 1999

한국외교발전론김정원, 집문당, 1996

한국과 일본: 새로운 만남을 위한 역사인식하영선 편, 나남출판, 1997

전환기의 한일관계이숙종 편, 세종연구소, 2002

한국에게 일본은 무엇인가?김영작·이원덕 편, 한울, 2006

집필자
황지환(서울대 통일연구소 선임연구원)
최초 주제 집필
2017. 12. 26
최초 주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