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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병무

앙골라공병부대

주제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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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유엔 안보리 앙골라 PKO(UNAVEM-III)설치 결의와 관련하여 최초 한국에 지뢰제거 임무를 수행할 공병 200명의 파병을 비공식적으로 요청해 오자 한반도의 안보상황, 국제정세, 국가 외교 차원의 기여도 등을 고려해서 파병 검토가 이루어졌다. 앙골라 파병은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 여건 조성 차원에서 적극 고려되었다. 
배경
앙골라 PKO 공병부대 파견은 1995년 2월 9일 UN에서 앙골라 평화유지단(UNAVEM-III)DP 200명 규모의 공병부대 파견의사를 타진하는 공한을 송부해옴에 따라 검토되었다. 우리 정부는 외무부, 국방부가 협의 후 지뢰제거 작업을 하지 않는 조건에서 한국 공병부대 파견은 가능하다고 UN에 통보하였고, 이에 UN은 건설공병부대 파견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국방부와 외무부 PKO실무관이 1995년 4월 10일∼20일까지 앙골라 현지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한국 공병부대에게 부여되는 도로소통 확보 임무가 지뢰제거 작업을 수반하고 있어 임무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교량보수 임무에 국한될 경우에만 파견을 검토할 수 있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1995년 5월 2일 UN에 통보하였다. 이러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UN이 수락함에 따라 190명 규모의 조립교 설치 공병부대 파견을 국무회의 의결(1995.7.7.)과 대통령의 재가(1995.7.6.)와 국회의 동의를 거쳐 1995년 7월 11일 앙골라에 공병부대를 파견하게 되었다. 

내용
앙골라 공병부대의 파견목적은 유엔의 국제평화유지 노력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평화유지활동(UN Peace-keeping Operation)에 유엔회원국으로서 적극 기여함과 동시에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서였다. 파견이후 공병부대의 주요 활동은 1995년 10월부터 1996년 12월 23일까지 총 3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1) 제1진의 주요 활동(1995. 10. 4.∼1996. 4. 18.) : 육군본부에서는 현지조사단 협조결과에 의거 1995년 8월 17일 제1113 야공단(야전공병단)에서 제101 야전공병대대를 모체로 앙골라 PKO 파견부대를 창설(육군 일반명령 제87호)하고, 부대명칭을 “제101 야전공병대대”(이하 ‘PKO 앙골라 공병부대’)라고 명명하였다. 












1995년 9월 26일 제1진 선발대 출발을 시작으로 10월 5일 본대(중령 천영택)가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임무수행에 들어갔다. 한국 공병부대는 임시숙영지에서 약 2주간 부대전개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1995년 10월 11일-12월 2일까지 주둔지 건설을 완료 후 부여된 교량복구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제1차로 ‘치피파’ 교량 복구공사, 제2차 ‘난뎀바’ 교량 보수공사, 제3차 ‘쿠이마’ 교량복구공사 등 총 4개소 260m의 대규모 교량건설을 성공적으로 완료하여 한국 공병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과시하여 국제적으로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본 공사 준공으로 앙골라 중지역의 원활한 교통소통은 물론 평화유지활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한국 공병부대의 기본 임무인 교량복구공사 이외에도 우암보 공항 보수 및 시내도로 60여 km 도로보수를 실시하여 진정한 평화유지군으로서의 이미지를 고양시켰으며, 1995년 11월 25일 지역주민의 식수난 해결을 위한 ‘희망의 샘’ 공사를 완료하여 주민의 숙원 사업 해결과 우암보 소재 성(聖) 프란치스코학교 고아 480명을 대상으로 위문을 실시하고, 1996년 1월 10일 사랑의 학교를 운영, 내전(內戰)으로 학업의 기회를 잃어버린 ‘우암보’ 어린이들에게 문자해독 능력을 길러줌과 동시에 인도적인 견지에서 평화유지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러한 한국 공병부대의 활약상을 앙골라 국영 TV 6회, 국영라디오 22회, 주요 일간지에 7회 게재되는 등 외교 불모지인 앙골라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제고하였다. 특히 1996년 2월 18일∼19일 간에 실시한 ‘한국의 날’ 행사에서는 ‘우암보’ 시민 3천 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문화를 소개하였으며, 한국 공병부대 제1진은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1996년 4월 18일 부대교대 후 철수하였다. 























(2) 제2진의 주요활동(1996. 4. 18.∼1996. 10. 17.) : 제2진은 한국 공병부대 제1진과 부대교대를 위하여 1996년 2월 5일 제1113 야공단에서 편성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파견준비를 시작하였다. 제2진(중령 박계수)은 앙골라 내전으로 파괴된 교량공사 및 도로보수를 실시할 목적으로 현지 활동에 필요한 재보급 물자와 장비(총 182개 항목 / 180, 165점)를 준비하여 1996년 3월 6일 부산항을 출발, 4월 19일 현지에 도착하였다. 제1진에 이어 제2진 임무 역시 내전으로 얼룩진 앙골라에서 파괴된 교량 및 도로복구 공사, 고아원 위문활동, 사랑의 학교운영, 대민지원활동 등 평화유지활동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제2진은 1996년 4월 6일 선발대 출발에 이어 4월 18일 본대가 앙고라 우암보지역에 도착하여 제1진이 주둔했던 우암보지역에서 제1진과 업무 인수, 인계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PKO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특히 제2진은 주둔지에서 부대 운영을 위한 보강작업과 환경개선, 부대주변 철조망 보완 및 조명지뢰 보강 공사에 완벽을 기하였으며, 공사 착수전 파괴교량 인접지점에 소파견 숙영지를 건설하여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제2진은 UNAVEM-III 사령부, 민간국제기구(NGO)와 긴밀히 협조를 이룬 가운데 앙골라의 평화정착을 위해 첫 번째 교량복구 공사로 ‘께베’ 교량복구 공사에 이어 “까닌다” 교량보국 공사 등 부여된 4개의 교량 총 184m를 완공시킴으로써 앙골라 중부지역의 원활한 도로소통은 물론, 내전으로 파괴 된 복구공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제2진은 기본임무인 교량복구 공사 이외에도 우암보 시내 도로복구 공사, 간선도로 신설, 노면보수 등 지역주민의 민원해결과 내전으로 부모를 잃고 외부의 도움없이 절망상태에 빠진 ‘성주앙’ 고아원 위문활동을 위해 자체 식생활 물자를 절약하여 위문품을 전달하는 등 인도적인 차원에서 PKO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한편 제2진은 파견기간 중 대민지원 활동을 통해 UN인권 관계자 및 현지 주민들로 하여금 깊은 신뢰와 아낌없는 격찬을 받았다. 이러한 한국군의 활약상을 앙골라 국영방송은 물론 CNN방송에서 심층취재 보도하였고 한국의 날 소개 행사에서 한국고유의 사물놀이, 태권도 시범, 특공무술 시범 등 한국군의 전통예술과 한국 문화를 소개함으로써 한국군의 위상을 제고시키는 한편, PKO활동시한이 끝난 제2진은 제3진과 부대교대 후 10월 16일 철수하였다. 























(3) 제3진의 주요활동(1996. 10. 17.∼12. 23.) : 제3진은 한국 공병부대 제2진과 부대교대를 위해 1996년 8월 11일 제1113 야공단에서 편성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파견준비를 시작했다. 제3진 부대장(중령 이상대)은 앙골라 내전으로 파괴된 교량공사 및 도로보수 공사에 필요한 재보급 물자와 장비(총 1,380종, 129,870점)를 준비하여 1996년 9월 23일 부산항을 출발 11월 13일 현지에 도착하였다. 























제3진의 임무는 앙골라내전으로 파괴된 교량 및 도로복구 공사, 고아원 위문활동, 사랑의 학교 운영, 대민지원 활동 등 평화유지활동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제3진은 1996년 10월 7일 선발대 출발에 이어 10월 16일 본대가 앙골라 중부 우암보지역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평화유지 활동에 들어갔다. 제3진은 앙골라 평화정착을 위해 N'GOVE 비행장 복구공사, 각종 공공시설 공사 및 사회복지시설 보수 등 현지주민들의 생활편의 입장에서 우선적으로 민원을 해결해 주었다. 내전으로 삶의 의욕을 상실한 고아들을 위문하는 등 인도주의적인 견지에서 PKO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앙골라 공병부대는 임무수행 중 최초 파견기간(1997년 3월 철수예정)보다 조기철수가 대두되었는데, 앙골라 현지 정세의 호전과 UN의 재정난 심화로 단계적 감축계획에 따라 한국공병부대는 완전철수를 계획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각종 장비 철수, 물자는 총 1,043종, 19만 2천 점으로 철수에 따른 수송경비는 전액 UN의 부담으로 이루어졌다. 























제3진 한국공병부대 장병들은 1996년 12월 13일 UN으로부터 UN평화유지활동 공로표창 및 메달을 수상했다. 제3진 부대장(중령 이상대)은 답사를 통해 ‘우리 대한민국 공병부대는 앙골라의 평화정착을 위해 약 15개월 동안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동안 한국공병부대가 앙골라에서 흘린 땀과 열정이 앙골라의 정치, 경제 및 사회 전반에 걸쳐 조기에 정착되고 밑거름이 되기를 기원 한다’고 언급하였다. 이어서 UNAVEM-III 사령관과 UN특사는 훈시 및 축사에서 ‘한국군이 보여준 헌신적인 평화유지활동에 전 UN군 요원과 앙골라 주민 모두가 한국군의 우수성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전 장병의 모범적인 활동과 공로는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인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앙골라공병부대의 파병성과 및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국위선양 및 군사외교 활동을 강화하였다. 공병부대원들은 기본임무 이외에도 각종 대민지원과 친선활동 및 구호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정부 및 지역주민들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음으로써 한국군의 우수성을 과시하였다. 또한 현지 활동간 타국 참모장교 및 지역 주민, 지역 언론 매체, UN 언론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 및 한국 공병대대의 활동 상황을 적극 홍보하였다. 한국 공병대대 및 참모 요원들이 현지 교민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가지면서 대정부 차원의 홍보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현지 한국 교민들의 입지 강화에 일조하였다. (2) 참모요원 및 공병대대 동시 파견으로 업무의 효율성이 증대되었다. 앙골라 공병대대는 PKF 사령부 및 지역 여단 본부에서 활동하는 참모장교와 동시 파견됨으로써 사령부와의 긴밀한 정보교환 및 유기적인 업무 협조를 통하여 부여된 임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였다. (3) 외국군 및 외국 군사제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각국의 부대와 참모장교와 같이 근무함으로써 각국의 군사제도 및 장비의 장점을 습득할 수 있었다. 특히 영국의 군수지원체제, 포르투갈의 야전텐트, 나미비아의 APC(지뢰검증 차량), 인도 공병의 지뢰제거 로라 등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참고자료
 〈제176회 국회(임시회) 제1차 전체회의 국군공병부대의 앙골라유엔평화유지단 참여동의안〉 (1995.7.13.)
 〈제180회 국회(임시회) 제11차 전체회의 국군공병부대의 앙골라유엔평화유지단 파견연장동의안〉(1996.7.27.)
 국방부, 《국방백서 1996-1997》, 국방부, 1996.
 육군본부, 《앙골라 공병부대 사진집 : 앙골라 평화유지활동(1995.10.∼1996.12.)》, 육군본부, 1997. 
 육군본부, 《공병병과사》, 육군본부, 1999.
 육군본부, 《공병병과 50년 발전사》, 육군본부, 2000.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한국의 PKO 파병사》,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07. 
 국방부, 《국방백서 2012》, 국방부, 2012.

집필자
최정준(국사편찬연구소 국방사 연구원)
최초 주제 집필
2017. 12. 26
최종 주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