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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관광사업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단체관광객의 남북관광 허용방침, 1992. 4., 정부 발표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체결, 1989. 1.

배경
금강산관광사업에 대한 논의는 1989년 1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남한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방북하여 조선대성은행 이사장 겸 조선아세아무역촉진회 고문 최수길과 ‘금강산 관광 개발 및 시베리아 공동 진출에 관한 의정서’를 체결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현대와 북한 간에 금강산관광사 업을 합의하기까지는 약 10여 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1998년 4월 30일 정부의 ‘남북경협 활성화 조치’가 발표되고, 같은 해 6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일행이 북한을 방문하여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와 금강산관광 및 개발 사업에 합의하였다. 이어서 1998년 11월 18일 관광선 금강호가 이산가족 등 826명을 태우고 동해항을 출발하여 북한의 장전항에 입항함으로써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다.

내용
금강산 관광사업은 금강산종합개발사업의 1단계 사업에 해당한다. 금강산종합개발사업은 크게 3단계로 나누어 추진될 예정이다. 1단계 사업은 관광선 운항에 의한 관광사업이고, 2단계 사업은 관광사업 지역에 호텔, 스키장, 골프장, 공항 등의 시설을 개발하는 사업이며, 3단계 사업은 2005년부터 추진하는 사업으로, 대규모 국제회의장, 문화촌 등을 건설하여 연간 1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계획이었다. 


남북 관광사업 활성화의 큰 기대를 안고 출발한 금강산관광사업은 관광이 시작된 지 2년이 경과하면서 사업자인 현대그룹 측의 자금난과 북측의 육로관광, 특구지정 등 관광활성화조치 이행 지연 등 때문에 2002년 초에는 관광객이 월 1천 명까지 감소하는 등 중단위기에 직면하였다. 우리 정부는 2002년 3월 28일 금강산 관광객에 대한 경비지원지침을 제정하여 2002년 4월부터 초·중·고등학생과 이산가족·국가유공자·장애인 등에게 관광경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조치를 취했다. 관광 경비 보조금 지급은 국회의 부정적 의견으로 지속되지 못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던 금강산관광은 육로관광이 시작되면서 다시 활기를 띄게 되었다. 남북은 2002년 9월 금강산에 서 개최된 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당국 간 회담에서 2002년 12월 초 육로관광을 시작한다는 데에 합의했으며, 2003년 1월 27일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임시도로 통행에 대한 군사 보장합의서’를 타결하였다. 육로관광은 2003년 2월 4일∼5일 사전답사와 시범관광을 거쳐 3회 실시되었다가 북측 도로공사 사정으로 일시 중단되었으나, 2003년 9월 1일 재개되어 2008년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매일 실시되어 왔다.


금강산관광사업은 당국 차원의 노력과 함께, 사업자 차원에서도 관광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었다. 2000년 10월에는 일본 관광객 과 해외 교포에 대해 금강산관광이 허용되었으며, 금강산지역 내 숙박 시설을 갖춘 해상호텔인 ‘호텔 해금강’이 문을 열었다. 2001년 6월 8일 현대와 북측은 회담을 열고 금강산관광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육로 관광, 특구 지정, 관광 대가 조정 등에 합의하는 한편, 북 측은 2002년 11월 13일 「금강산 관광지구법」을 발표하여 금강산을 관광특구로 지정했다.


금강산관광이 활성화되면서 외금강 지역에서만 이루어지던 금강산관광이 2007년부터 내금강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현대아산과 북한은 2006년 봄 남북공동답사 후 내금강 관광 실시에 합의했다. 그러나 그 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으로 국내외적인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사업 시작 시기를 늦추다가 2007년 5월 27일~28일간 시범관광을 실시한 뒤 6월 1일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본 관광이 시작되었다.


금강산관광사업은 사업자의 자금난과 해로관광으로 인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 때문에 관광객이 감소하는 등 한때 중단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금강산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서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었다. 또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공사의 진전으로 2003년 2월부터 육로 관광이 시작됨에 따라 금강산관광사업은 다시 활기를 띄게 되었다. 이와 함께 관광상품 확충 등으로 관광 시작 6년 만인 2005월 6월 누적 관광객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서고 2008년 8월 2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2008년 7월 관광이 중단되기 전까지 금강산관광은 누적 관광객 200만 명을 앞두고 있었으며, 2008년 3월 17일부터는 승용차 관광이 시작되었고, 7월 중순에는 비로봉 관광이, 7월 말에는 골프장 개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또한, 금강산관광지구에는 약 40여 개에 이르는 남측 기업과 현대아산 협력업체들이 특구 개발 사업에서부터 골프장, 면세점, 땅콩판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8년 7월 11일 북한군에 의한 우리 측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광이 중단되었다. 우리 정부는 북한 측에 진상 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 확실한 신변안전 보장조치 등을 요구했으나 북한 측의 소극적 태도로 현재까지 중단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참고자료
허문영, 《북·중 정상회담 평가와 우리의 정책방향》, 통일연구원, 2010. 5.
이규창, 《금강산관광 독접권 조항 효력의 일방적 취소 : 법적 평가와 북한의 의도》, 통일연구원, 2011. 4.
통일정책연구센터, 《현대그룹-아태평화위 공동보도문 의미》, 2009. 8.
현대아산 홈페이지 http://www.hyundai-asan.com
금강산기업인협의회 http://www.mtkg.co.kr
통일부, 〈정부, 금강산 관광사업 승인〉, 1998. 9. 8.자 보도자료

집필자
허문영(통일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15. 11. 25
최초 주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