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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중소기업

장기전자공장건설계획(1973)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73년 대통령의 중화학공업화선언 내용
배경
1973년 1월 12일 중화학공업화 선언에서 대통령은 “‘대단위 전자부속품생산단지도 지금 추진하고 있고 마산에 있는 수출자유지역과 같은 단지를 앞으로 2-3개 더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전자공업을 수출 전략업종으로 육성하여 수출 25억 달러를 달성하려면 부품 부문의 신장과 신제품의 추가가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대단위 공장건설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특히 전자공업의 수출목표 및 투자계획의 기본전제가 (1) 민생용 전자기기 및 전자 부품 제조 부문은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 (2) 산업용 전자기기 및 전자재료 제조부문은 수입대체산업으로 육성, (3)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여 합작투자에 의거 공장을 건설, (4) 부품 및 원자재를 90% 이상 개발하며 해외의존을 탈피, (5) 전자계산기 및 자동제어장치의 국산화 기초 구축의 5가지로 되어 있어 대규모 공장의 건설이 시급히 요청되었다.
경과
1973년 3월 29일 구미공업단지 행정관리주체 일원화 및 현장종결 행정체제가 수립되었다. 이 내용은 (1) 한국전자공업공단 관장단지와 경상북도 관장단지를 통합하여 구미공업단지로 단일화, (2) 현 한국전자공업공단을 ‘수출산업 개발공단’으로 개편 추진, (3) 단일화된 구미공업단지의 행정관리는 공업단지관리청이 관장, (4) 현지에 공업단지관리청의 관리사무소를 설치하고 관계행정업무를 위임받아 현장종결행정을 실시하는 네 가지였다. 이러한 개편 위에 전자공업의 연도별 공장건설계획 1안이 1973년 4월에 만들어졌다. 1안은 수정되어 다시 전자공업의 연도별 공장건설계획 2안이 1973년 7월에 작성되었다. 수정된 안을 가지고 재차 수정 완성된 것이 1973년 9월 25일 발표된 「장기전자공장건설계획」이다. 이 계획에 의해 1973년 8월 28일 상공부는 수출확대회의에서 국내전자공업육성시책에 따른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100% 단독외국인 투자를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내용

장기전자공장건설계획은 1973년부터 1981년에 걸친 9년간의 대단위 전자공장건설계획이다. 이 장기공장건설계획은 다음의 내용을 주요내용으로 하였다.


우선, 전자공업을 수출전략산업으로 계속 육성할 것을 분명히 하였다.


둘째, 그리고 1,192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전자제품 94개 품목을 대상으로 767개 공장을 건설하기로 하였다. 그 세부내역은 기기공장이 240개, 부품공장이 527개로 구성되고 연도별로는 1973년 64개(기기공장 19개, 부품공장 45개) 공장, 1974년 87개 공장, 1975년 83개 공장, 1976년 91개 공장, 1977년 82개 공장, 1978년 83개 공장, 1979년 86개 공장, 그리고 1980년과 1981년 각각 102개 공장, 89개(기기공장 53개, 부품공장 36개) 공장을 건설하는 것으로 하였다.


셋째, 전자공장건설계획이 완료되는 1981년에는 전자공업의 부품 및 원자재를 80% 이상 자급하도록 하였다.


정부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자기기인 칼라TV, 녹음기 등을 수출산업으로 육성시키며, 부품공업, 산업용 전자기기 및 전자재료공업은 수출 또는 수입대체산업으로 육성키로 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기에는 전자재료 및 관련부품의 해외의존을 완전히 탈피하고 민생용기계의 고급품 및 신규상품의 개발을 추진하여 수출시장의 확대를 기하도록 했다.

참고자료

대통령비서실,《중화학공업화정책선언에 따른 공업구조 개편론》, 1973.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화정책(해설)》, 1973.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 제2권》중화학공업정책사, 1979.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