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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해외인력수출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세계 경제 질서가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시장경제의 개방화 흐름으로 재편되면서국제무역, 기업의 해외진출, 해외개발투자 및 해외협력 등과 같은 해외개발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한국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독일, 중동 등 각 나라로 인력을 수출하는 전통적인 노동력 수출국의 범주에 속해왔으나, 이제는 외국인 근로자를 수입하고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한편에서는 해외투자의 필연성을 역설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의 해외진출로 인한 산업공동화를 우려하고 있다.
배경
1960년대 말 우리나라는 폭발적인 출산율 증가와 함께 빈약한 산업구조로 인해 실업률이 40%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의산업화정책은 기능 인력과 함께 막대한 외화자본을 요구하였다. 빈약한 외화자본을 가진 정부는 실업률 감소와 함께 선진국에서의 기능 인력의 기술습득, 안정적인 외화획득을 위하여 국내 산업인력들의 인력수출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서독의 광부 및 간호사 인력의 인력수출과 1980년대 중동 건설 붐으로 인한 건설인력의 수출은 이러한 현상과도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 기업구조 변화로 인하여 전통적인 인력수출 국가의 범주에서 벗어났으나, 꾸준히 해외로의 인력수출은 이루어지고 있다.
내용
우리나라의 근로자해외진출은 1960년대 후반에 이루어지게 되는데, 서독의 광부, 간호요원이 주를 이루었다.1977년까지 독일로 건너간 광원이 7,932명, 간호사가 1만226명에 이를 정도로 해외로의 인력수출은 그 규모가 매우 컸었다. 그 후 1970년대에는 중동 산유국의 건설 붐과 월남전 등에 따라 국내 건설업체의 해외진출과 훈련기관을 통한 건설기능 인력의 양성으로 해외 인력 진출이 활성화되었다. 당시 중동은 1973년 석유파동으로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여, 자국의 국내 개발을 착수 하였으나, 필요한 인력과 기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특히 중동 대부분의 국가들이 착수한 자국 내 개발은 대개가 운송·통신·교육·의료·주택 등 사회간접자본시설들 이었는바, 이들은 모두 건설과 관련이 있었다. 당시 한국은 수개의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건설사들이 대형 공사를 시공해냄으로서 경험을 축적하고 시공기술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건설 장비 또한 대규모로 보유하게 된 상태였다. 그러나 점차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확충되어 국내 건설 수요가 감소하자, 건설업계는 막대한 공급능력을 해외시장으로 내보내려는 돌파구를 찾던 시점이었다. 이러한 한국의 경제 상황과 중동의 경제 시장이 맞물리면서, 국내 기업들은 중동의 건설공사를 수주하였고, 많은 건설 기능 인력들이 중동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근로자의 해외진출은 국제 원유가 하락, 국내 임금의 상승 등으로 1983년을 기점으로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1997년외환위기 이후 실업해소를 위해 다시 해외로의 인력수출이 다시금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자료

김재식, 해외 인력수출(진출)의 경제적 효과: 해외이주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5
집필자
유성재(중앙대 법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