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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한국전쟁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배경

“한국전쟁”이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인민군이 북위 38˚선 이남으로 무력침공함으로써 남한과 북한 간에 발생한 전쟁을 말한다. ‘6·25 사변’ 또는 ‘6·25동란’이라고도 하며,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韓國戰爭 Korean War: 일부에서는 Korean Civil War라고 주장하기도 함)”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전투행위가 계속되었다.

내용

1950년 6월 25일 새벽을 기해 전 전선에서 침공을 감행한 인민군은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7월 19일에는 대전을 점령한데 이어, 8월 31일에는 낙동강 전선까지 진출하였다.


전쟁 개시 두 달 여만에 남한 전체 국토의 대부분을 점령한 것이다. 반면 이승만 정부는 전쟁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6월 27일 대전으로 정부를 이전하고, 7월 8일에는 대구, 8월 18일에는 부산을 임시수도를 정하는 등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의 과정은 몇 개의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첫 단계는 인민군의 공세기로서 전쟁 개시에서 9월 15일까지의 상황으로 낙동강 전선까지 인민군이 진출했던 단계, 두 번째 단계는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이후 UN군의 전면적인 공세 단계로서 9월 15일에서 11월 초까지의 단계, 세 번째 단계는 중국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다시금 중부 지방에서 교착되는 인민군과 중국군의 합동공세 단계로서 1950년 11월 초에서 1951년 1월까지의 단계, 네 번째 단계는 전선이 교착되고 휴전이 모색되는 단계로서 1951년 2월에서 5월까지의 시기, 마지막으로 휴전협상과 소모전의 단계로서 1951년 5월에서 정전까지의 단계이다.


북한의 한국전쟁 개시는 즉각적인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가져왔다. 전쟁개시 직후,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해·공군에 출동명령을 내리고,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을 침략군으로 규정하고 UN군을 조직하였다. 7월 1일에는 UN군 지상부대가 부산에 상륙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전쟁에 개입하였다. UN군의 개입으로 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국내전이 아니라 UN군과 북한, 그리고 중국군으로 이어지는 국제전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전쟁 초기 일방적으로 밀리던 한국군은 9월 15일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으로써 전세를 역전하였다. 인민군은 괴멸적인 타격을 받게 되었으며, 압록강 근처에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군의 참전으로 전쟁은 다시금 중부전선에서 교착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전쟁은 어느 한편의 승리로 귀결되기에는 어려워졌다. 이에 소련 UN 대표 말리크는 전쟁 당사국에게 휴전을 제의하게 되었고, 1951년 6월 30일 리지웨이 UN군 최고사령관의 휴전 제의와 김일성·팽덕회의 동의로 휴전회담이 진행되게 되었다. 양측은 2년이 넘는 휴전 회담을 거쳐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조인하고 전쟁을 중지하였다.

참고자료

박명림,《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Ⅰ, Ⅱ》 나남, 1996
김학준,《한국전쟁》 박영사, 2003
이완범,《한국전쟁 - 국제전적 조망》 백산서당, 2000
최장집 편,《한국전쟁 연구》 태암, 1990
브루스 커밍스, 김주환 옮김 《한국전쟁의 기원》(상, 하) 청사, 1986
와다 하루끼, 서동만 옮김 《한국전쟁》창작과비평사, 1999
김근식 외,《통일·남북관계 사전》통일부 통일교육원, 2004

집필자
윤황(국립경찰대학교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2. 0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