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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중학교 무시험 전형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7·15입시개혁안(1968년 문교부 정책안)

배경

1954~1959년 의무교육완성 6개년 계획이 추진되면서,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96%를 상회하는 완전취학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중등교육에 대한 지원은 그에 미치지 못하여 1960년대에도 중학교 진학률은 여전히 50%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결국 중학교 진학단계에서 커다란 병목현상을 빚게 된 데다, 소위 명문학교라는 서열화 된 중학교가 존재하는 등 학교 간 격차문제가 중첩되면서, 중학교 입시 경쟁은 더욱 치열한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심신의 발육에 지장이 있을 만큼 밤늦도록 과열 과외에 시달렸으며, 초등교육은 중학교 입학시험에 따라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많았다. 학부모들의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 재수생의 증가 등 사회적 문제도 심각하였다. 급기야 무즙파동’, ‘창칼파동등에서 보듯이 중학교 입학시험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법정문제로 비화되는 등 중학교 입시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되면서 중학교 진학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갔다. 이에 따라 1968년 문교부는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7·15입시개혁안’)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경과

해방 이후 중학교 입시정책은 3,4년 마다 변화를 거듭했다. 1945~1950년은 학교관리제 시기로, 초등학교 내신서와 입학시험 성적에 의해 각 학교장이 선발하였다. 1951~1953년은 전쟁 시기로, 개별학교의 관리가 어렵게 되어 국가가 실시하는 연합고시로 선발하였다. 1954~1957년은 다시 학교관리제로 환원되었으며, 무시험 선발이 권장되었으나, 학생 선발권을 지닌 학교장들은 점차 시험을 치르는 쪽을 선호하게 되었다. 1958~1961년은 연합출제의 시기라 할 수 있는데, 학교에 따라 유시험 혹은 무시험을 선택하고, 유시험제를 택하는 학교들은 시험문제를 공동 출제하도록 하였다.

1962년 한 해는 군사정부가 국가고시로 학생을 선발하기도 하였다. 1963~1965년은 다시 시·도별 공동출제 제도로 바뀌었고, 1965년에는 입시과목이 전 과목으로 늘어났다. 1966년에는 학교장 책임 하에 단독 및 공동 출제 중에 선택하도록 하였다가, 1967년부터 시·도 교육감의 책임 하에 공동출제로 바뀌었다.

내용

중학교 입시제도가 정부의 주요한 정책의제가 되어 중학교 입시제도에 지속적인 변화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초등학교 학생들의 과열 입시경쟁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더욱 심각해져갔다그리하여 마침내 문교부는 1968년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7·15입시개혁안은 아동의 정상적 발달 촉진초등학교 교육의 정상화과열 과외공부의 해소극단적인 학교 간 격차의 해소입시준비로 인한 과도한 학부모 부담의 경감 등을 정책 목표로 하였다이를 위해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를 전격 도입하여, 1969년부터 중학교 입학시험제를 폐지하고중학교 학교군을 설치하며해당 학군 내에서 추첨으로 중학교를 배정한다는 것이었다.

참고자료

교육인적자원부, 교육통계연보, 2005

교육50년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 50)교육 50년사 : 1948-1998, 교육부, 1998

집필자
박철희(경인교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24. 04.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