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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일본 대중문화 개방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해방 이래 1990년대에 이르기 까지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는 일종의 금기대상으로 치부되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긴밀해지고 인적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일본 대중문화는 한국에 자연스럽게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일제의 한국 통치라는 역사적 유산과 대일감정을 고려하여 왜색문화의 침투를 경계하는 입장에서 일본 대중문화의 유입을 불허하는 입장을 견고하게 유지해 왔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한국사회와 경제의 개방화, 국제화 바람에 힘입어 일본대중문화는 음성적으로 널리 유포되게 되었다. 이후 일본대중문화의 개방문제는 국내에서 찬반론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면서 정책적인 어젠다로 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1998년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대중문화에 대한 개방조치를 전격적으로 취하게 되었다.

배경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대중문화에 대한 전격적인 개방조치를 내리게 된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작용하였다. 첫째, 일본대중문화는 개방조치 이전부터 이미 한국사회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었다. 일본유행가나 애니메이션, 만화 등은 이미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존재가 되어 있어 법적으로 이를 막는데 한계가 뚜렷할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불법화 할 경우 음성적으로 더욱 유포될 우려가 제기되었다. 둘째, 김대중 정부는 일본의 대중문화를 단계적으로 개방할 경우 일부가 우려하는 것처럼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문화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될 것으로 는 보지 않았다. 즉,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의 대중문화가 일본에 비해 충분히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셋째,IMF 위기 속에서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근본적인 관계개선을 통한 경제협력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를 위해 일본에게 선제적인 양보조치를 함으로써 일본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정치경제적인 지원과 협력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내용

김대중 정부는 1998년 10월 이제 까지 허용하지 않아 왔던 일본 대중문화의 유입을 전격적으로 허용키로 하였다. 1998년 10월8일 김대중 대통령은 '단계적이되 상당한 속도의' 일본대중문화 개방 방침을 천명하고 다음의 단계에 입각하여 개방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1차개방(1998년 10월20일): 영화 및 비디오: 공동제작 영화, 한국영화에 일본배우 출연, 4대 국제 영화제 수상작, 한.일 영화주간 상영작. 일본어판 만화와 만화잡지.


2차개방(1999년 9월10일): 영화 및 비디오:공인 국제영화제(총 70여개) 수상작, '전체 관람가'영화(애니메이션 제외). 공연:2천석 이하 규모 실내장소의 대중가요 공연.


3차개방(2000년 6월27일): 영화 및 비디오:'12/15세 관람가' 영화. 극장용 애니메이션:국제 영화제 수상작. 대중가요 공연: 전면 개방. 음반: 일본어 가창 제외 나머지 음반. 게임:게임기 용 비디오 게임물 제외 나머지 게임물.


개방 일시중단 조치(2001년 7월12일): 문화관광부,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시정 거부에 대한 대응조치로 일본대중문화 추가 개방 중단 발표.


개방재개(2003년 6월7일): 노무현 대통령, 한.일 정상 공동선언에서 '문화교류 활성화위해 일본대중문화 개방 확대' 천명.


4차개방(2003년 9월17일): 영화, 음반, 게임분야 완전개방 발표를 함.(단 일본방송과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개방의 폭을 추후결정) 2004년 1월1일부터 완전개방 실시

참고자료

이원덕,《한일과거사 처리의 원점》서울대출판부, 1996
하영선 편, 《한국과 일본: 새로운 만남을 위한 역사인식》나남출판, 1997
이숙종 편, 《전환기의 한일관계》세종연구소, 2002
김영작·이원덕 편,《한국에게 일본은 무엇인가》한울, 2006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교수 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