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상징되는 1991년 남북관계의 진전과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 「안전담보협정」의 서명을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1992년 실시예정이던 팀 스피리트 훈련의 중지를 선언했는데, 이는 1976년 훈련이 시작된 이후 최초의 훈련중지였다. 그러나, 1992년에 북한의 과거 핵 활동에 대한 의혹으로 불거진 핵 위기 상태로 인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경색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한미 양국은 북한에 대한 압력 행사의 일환으로 1992년 10월의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1993년도 훈련재개를 결정하고, 이듬해 3월 8일 규모와 기간을 축소하였지만, 훈련을 재개하였다. 1993년에도 북한 핵 위기의 긴장상태가 지속되자 한미 양국은 1994년도 훈련의 지속을 논의하였다. 미국은 핵대치를 해결하기 위한 유화적인 정책으로 팀 스피리트의 취소를 논의하기도 했지만, 북한의 강경한 대응으로 이러한 논의가 번복되는 과정을 거쳤다. 한국의 김영삼 정부는 북한 핵 위기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개선 문제에 팀 스피리트 훈련을 연계시켰다. 〈북·미고위급 회담〉이 지속되면 한국 정부의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북·미회담이 있기 전에 남북대화가 선행되기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는데, 훈련의 취소 문제를 이와 연관시켰다. 팀 스피리트 훈련을 두고 북·미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한·미사이에서도 논란이 계속되다가 미국은 1994년 3월 19일 훈련의 재개를 결정하였다가 4월 중순 한·미 양국은 상호간의 협의하에 훈련을 연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6월 카터·김일성 핵 합의를 계기로 북한 핵 문제가 해결국면으로 접어들자 팀 스피리트 훈련은 재개되지 않았다.
한국의 작전통제권 환수는 냉전종식과 한반도 주변환경의 변화, 한국군의 전력 성장에 따라 오래전부터 추진되어 왔다. 노태우 행정부는 작전통제권 환수를 추구하며 1988년 초부터 미국과 이에 대한 협의를 시작했다. 원래는 전시, 평시의 구분이 없이 작전통제권 전체가 환수되는 것이 한미 양국 사이에서 협의되었으나, 협상과정에서 평시작전통제권만 환수하고 전시작전통제권은 추후에 환수하기로 1992년 말에 합의함으로써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전시와 평시로 이분화되었다. 그 결과 1994년 12월 1일 한국군에 대한 평시 작전통제권은 한국군 합창의장에게 위임되었고, 한미연합사 체제를 유지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은 1996년 이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잠정적으로 합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