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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전두환 대통령 일본 공식 방문

주제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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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84년 9월 6일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공식적으로는 일본을 방문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의 공식 일본 방문은, 1983년 1월 나카소네 총리가 전두환 대통령의 방한초청을 받아들인데 대한 화답으로 정상회담에서 나카소네 총리의 방일초청 제안을 전두환 대통령이 전격 수락함으로써 성사되었다.

배경

1984년 9월 6일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공식적으로는 일본을 방문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의 공식 일본 방문은, 1983년 1월 나카소네 총리가 전두환 대통령의 방한초청을 받아들인데 대한 화답으로 정상회담에서 나카소네 총리의 방일초청 제안을 전두환 대통령이 전격 수락함으로써 성사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과 1950년, 1953년에, 그리고 1961년에 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방미 길에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모두 비공식 방문이었다.

내용

1984년 9월 6일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공식적으로는 일본을 방문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의 공식 일본 방문은, 1983년 1월 나카소네 총리가 전두환 대통령의 방한초청을 받아들인데 대한 화답으로 정상회담에서 나카소네 총리의 방일초청 제안을 전두환 대통령이 전격 수락함으로써 성사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과 1950년, 1953년에, 그리고 1961년에 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방미 길에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모두 비공식 방문이었다. 


1984년 9월 6일 하네다 공항 도착 후 오후 3시 영빈관에서 거행된 공식 환영행사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대통령과 일본의 천황이 대면하였다. 공식 환영행사 종료 후 전두환 대통령은 궁성으로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예방하였다. 예정시간 보다 10여분이 지난 예방 후 일본 천황은 현관까지 나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같은 날 오후 4시 30분부터 1시간 35분 동안 영빈관에서 나카소네 총리와 1차 정상회담을 가진 전두환 대통령은 저녁 8시 일본 천황이 궁성 2층에서 주최한 공식만찬에 참석하였다. 이날 만찬은, 히로히토 일본 천황이 황실 의전 사상 최대의 인원을 초청한 전두환 대통령 환영만찬이었다. 이 자리에서 일본 천황은 만찬사를 통하여 “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하여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의 뜻을 표명하였다. 관례상 국가원수의 공식 사과가 외교 용어상 ‘유감’으로 표시하는 것에 비추어 일본 천황의 그러한 표현은 현실적인 수준에서 사과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특히 일본 천황의 사과는 한국의 원수가 직접 받았다는 점에서 지난 역사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달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에 대한 침략과 수탈 등이 “불행한 과거”라는 표현 속에 농축되어 있으며 그것에 대해 일본 천황은 “진심으로 유감”이라고 하였다.

일본 천황의 사과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인 일본 천황이 직접 한국의 국가원수를 맞이하여 최초로 과거의 침략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했다는 것이다. 히로히토 천황은 당시 83세로, 재임 초기 20년간 직접 식민지 통치를 관장하였던 장본인이었다. 


둘째, 일본 천황의 과거사 반성은 같은 민주주의 진영으로서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미래지향적인 동반자적 한·일 관계를 구축할 토대를 제공하였다는 점이다. 


한·일 양국은 1965년 기본조약을 체결하여 국교정상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은 법적·공식적으로는 정상화되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과거의 상처로 인한 응어리가 맺혀 미묘한 관계였다. 양 국민감정 속에는 지난 역사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어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양국은 상호 주요 교역 대상국이었고, 일본 내 외국인의 90% 정도가 한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국내 여론조사 결과 서로 싫어하는 나라로 나타났다. 일본 천황의 사과는 양국이 서로 감정의 앙금을 풀고 태평양시대의 동반자로 새 출발할 수 있는 지표를 설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하여 일본 천황의 사과 이전에 외무장관과 총리 등의 對한 사과가 있었지만, 일본 천황의 법적·상징적 지위와 정치적·역사적 의미 등의 무게가 있으므로 일본의 반성의지를 밝히는 데는 일본 천황의 직접 사과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천황은 만찬사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유감을 표시한 외에 일본이 한국을 통해서 문화를 수용한 사실을 시인하였다. 일본 천황은 “우리나라는 귀국과의 교류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예를 들면 기원 후 6, 7세기에 우리나라가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을 때 귀국의사람들이 많이 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학문, 문화, 기술 등을 가르쳤다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이 일본에 문화를 전수한 사실을 기정사실로 공식 천명한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일본이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까지 일으켰던 상황을 감안하면 상호 감정적인 앙금을 푸는데 좋은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 둘째 날인 9월 7일, 나카소네 총리는 총리관저에서 베푼 오찬 석상에서 “일본은 한국에 숱한 고난을 겪게 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일본 정부와 국민은 이 과오에 깊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장래를 위하여 엄숙히 계심(戒心)하려고 결의하고 있음을 밝힌다”고 하였다. 일본 천황의 사과에 이어 총리가 천황의 사과 표현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사과의 뜻을 재차 밝힌 것이다. 이러한 나카소네 총리의 사과는 일본이 한국에 대한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과오를 시인하면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며 새로운 한.일관계 설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양국 정상은 한·일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실현하기 위한 정상회담을 갖고 광범위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참고자료

김동조,〈미래를 여는 제2의 국교정상화〉《서울신문》, 1984.8.18
이병주,〈日皇의 사과를 받는 마음〉《서울신문》, 1984.9.8
〈全·中曾根 東京聲明〉《동아일보》, 1984.9.8 사설
《실록 제5공화국 (1)》《경향신문사》, 1987
김정원,《한국외교발전론》집문당, 1996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2. 0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