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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IMF, IBRD 제40차 총회 서울 개최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한국은 1955년 8월,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고자 IMF에 가입하여 자동적으로 IBRD에 함께 가입하였다. 가입 이후 1960년대에 IBRD 산하기구인 IDA(Inter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 국제개발협회), IFC(International Finance Coporation, 국제금융공사), ICSID(International Center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에 차례로 가입하였다. 그리고 1966년에는 ADB(Asian Development Bank, 아시아 개발은행)에 창설 가맹국으로 참여하였다.
가입 당시 한국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와 함께 동남아 그룹에 속했으나, 1970년 대표이사국으로 선임되었고, 1978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단독 이사국 진출로 호주그룹(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군도, 사모아 등)으로 이동하였다.
배경
한국은 1970년대 말까지 수혜국의 입장에서 〈경제개발계획〉의 수립과 시행에 필요한 정책자문과, 경제개발에 필요한 중장기 개발자금·국제수지적자 보전자금의 상당부분을 지원받았다.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은 한국 경제성장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추진과 함께 처음으로 장기무이자 재원인 IDA 차관을 받기 시작하였다. 1966년에는 〈경제개발계획〉 추진에 필요한 금융·기술 제공을 위해 IBRD가 주관이 되어 미국, 일본, 독일 등 9개 선진국과 IMF, UNDP(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유엔개발계획) 등으로 구성된 차관협의단, 즉 대한경제협의체(IECOK)가 발족되어 국제금융기구로부터 개발자금을 도입하였다. 1967년 이후 효율적인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으로 차입능력이 향상되었다. 그리고 IECOK의 지원에 힘입어 IBRD, IFC, ADB로부터 사회간접자본과 국가기간산업 확충에 필요한 상업베이스 차관을 본격적으로 도입해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1965년에는 국제수지적자 보전을 위한 중.단기 자금조달을 위하여, 처음으로 IMF와 스탠드바이협약(Stand-by Arrangements)을 체결하고 1968년부터 재원을 인출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IMF차관은 한국 국제수지적자 보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제1차 석유파동 직후에는 어려운 외환사정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한국은, 경제력 향상과 더불어 아프리카지역 국가와의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AfDF(African Development Fund, 아시아 개발기금)와 AfDB(Africa Development Bank, 아프리카 개발은행)에 가입하는 한편 CFC(상품공동기금), MIGA에도 창설 가맹국으로 참여하여, 종래의 수혜국 입장에서 벗어나 재원공여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내용
제40차 IMF(국제통화기금)·IBRD(세계은행) 총회가 서울로 유치되어 1984년 년차총회가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서울 힐튼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서울연차총회에는 세계 147개국에서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등이 대거 참가하였다. 이중 28개 미수교국의 공식대표단 213명이 참가하였으며, 부총리급 이상 인사가 22명, 장관급 인사는 119명으로서, 건국 이래 최대의 국제행사로 기록되었다.


서울총회의 주요 의제는, 국제통화제도 개편, 개발도상국의 외채문제, 보호무역주의와 뉴라운드(다자간 무역협상), 국제투자보증기구(MIGA)의 설립, 특별인출권(SDR)의 추가배분문제 등이었다. 서울총회에서는 MIGA(Multilateral Investment Guarantee Agency) 설립문제를 제외하고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 의견차이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다음 총회에서 재론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외채문제와 보호무역주의 등에 대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공동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는 점과, 미국과 일본 등이 개발도상국의 외채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한 점 등이 성과로 기록되었다.


서울총회의 가장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로 평가되는 것은 MIGA의 설립이다. 특히 이 기구의 설립협정문이 「서울협약」으로 불리게 되어 국제금융사회에서 서울총회가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로 한국의 국제적인 이미지를 향상시키는데도 기여하였다.
참고자료
《실록 제5공화국》1 경향신문사, 1987
도충구 외,《국제경제기구의 이해》학현사, 2001
《IMF의 금융지원과 우리의 대응》한국은행, 1997
《IMF 프로그램 시행 이후의 경제현상과 문제점》삼성경제연구소, 1998
집필자
전상숙(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