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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6·23선언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배경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은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6·23선언〉은 1970년 〈8·15선언〉, 1971년 8월 12일 〈남북 적십자회담〉 제의,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 이어 대한민국 대외정책의 기본노선을 천명한 것이었다. 이 선언은 데탕트 시기 한국외교와 대북정책의 경험과 성과 그리고 한계를 응축하고 있었다. 


1960년대 선건설, 후통일 전략에서 1970년대 적극적 대화전략으로 선회한 박정희 정부는 북한과 일련의 접촉과 대화를 통해성과와 후퇴를 경험하였다. 북한은 1970년대 적극적 대외정책을 펼쳐 수교국 수를 늘리고, 여러 국제기구에도 진출했으며, 비동맹권 외교에서 북한의 존재를 부각시켜 나갔다. 한국이 외교전에서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벌어지자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외교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동구권과의 교류 확대 등 적극적인 외교방향을 담은 외교독트린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내용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외교와 통일정책의 기본방향을 제시하는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서 박대통령은 남북대화가 우리 기대와는 달리 성과가 없었다고 자평하고, 남북대화에 임하는 우리의 입장이 실천 가능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는 점진주의적인 것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는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서 구체적 실적을 쌓아 나가면 남북 사이에 가로놓인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있고,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대통령은 열강들이 세력균형으로 평화공존을 유지하려는 흐름을 지적하면서, 평화의 정착과 자주 역량으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아래의 사항들을 선언하였다.


첫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둘째, 한반도의 평화유지를 위해 내정 불간섭과 불가침을 약속한다.


셋째, 남북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해 노력한다.


넷째, 긴장 완화와 국제 협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이 한국과 함께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섯째, 북한과 함께 국제연합에 가입할 용의가 있다.


여섯째, 호혜의 바탕 위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한다.


일곱째, 평화 선린에 기반을 둔 대외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우방과 기존 우호관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

역사적의의
〈6·23선언〉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대북정책의 입안과 실천을 바탕으로 향후 한국외교와 대북정책, 통일정책이 나아가야 할 바를 밝힌 것이었다. 〈6·23선언〉은 통일이 성취될 때까지 과도적 기간의 잠정조치로 발표된 것이었다. 남북대화와 〈6·23선언〉에도 불구하고 당시 박정희 정부가 북한을 정식으로 국가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6·23선언〉 발표 이후 박정희 정부는 남북한 UN 동시가입, 동북아 4강과 남북한 교차승인, 한반도 문제 토의를 위한 남북한, 미국, 중국 간 〈4자회담〉 제의 등 적극적이고 활발한 대외, 통일정책을 펼쳤다. 국제적인 데탕트 분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가 호혜성을 기반으로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힌 것은 당시 한국외교의 적극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6·23선언〉이 나온 두달 뒤 북한의 김영주가 남북대화 중단을 선언하여 1970년대 초 남북대화의 국면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참고자료
우승지,〈남북대화와 한미동맹관계의 이해, 1969∼1973〉《한국정치외교사논총》26집 1호, 2004.8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