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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박정희-존슨 회담

주제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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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배경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5월 17일 존슨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박정희의 방미는 본래 한국 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인 데에는 크게 다음의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첫째는 존슨 행정부가 박정희 정부에 대한 지원을 공개적으로 나타냄으로써 〈한·일회담〉타결을 추진하는 박정희의 국내 정치적 위상을 제고시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는 회담을 통하여서 한국군 전투 병력의 파병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박정희 역시 정상 회담을 통하여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미국의 대한 정책 변화에 대한 두 가지의 우려를 해소하고자 하였다. 그 하나는 미국의 경제 및 군사 원조가 감소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였다. 다른 하나는 대한 방위공약의 약화와 이에 따른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에 대한 우려였다.
내용
회담의 주요 내용은 미국의 대한국 원조 문제와 주한미군 철수 문제, 그리고 베트남전에 대한 한국의 전투부대파병 등이었다. 양국 사이의 〈정상회담〉에서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에 대한 박대통령의 지원에 감사하면서 미국은 이전과 같은 수준의 주한 미군을 유지할 것이라고 하였다. 더불어서 그는 베트남에 파병된 2,000명의 한국군이 의회에서 대한국 원조안을 통과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존슨 대통령은 한국군 1개 전투 사단을 베트남에 파병해 줄 수 있는지를 물으면서 만약 1개 사단을 파병해 준다면 베트남에서의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박대통령은 한국이 더 많은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 견해라고 전제하면서 이 문제는 한국정부에 의하여 검토되어야 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대통령은 주한 미군이 철수하지 않기를 강력히 희망하면서 주한 미군의 철수 논의가 베트남에 대한 한국의 지원을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존슨 대통령은 어떠한 주한 미군의 철수도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 하에 이루어 질것이라고 말했다.


5월 18일 양국 대통령은 양국 간의 우호관계증진, 월남지원에 있어서의 긴밀한 협조, 대한 원조의 지속, 한일 국교정상화 문제, 한국경제개발을 위한 1억5천만 달러의 장기 개발차관 공여, 주한미군주둔 지위협정의 조기체결 등을 위시한 14개 항의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특히 공동 성명서는 제5항에서 “미국은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적 침략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공동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 1954년의 「대한방위조약」에 의거하여 군사력의 행사를 포함한 모든 가능한 원조를 즉시, 효과적으로 제공할 것이며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하여 계속하여 한국 내에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한편 제7항에서는 미국의 대한국 경제원조는 한·일국교정상화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하였다.
참고자료
마상윤〈제 3공화국 정치와 외교의 전개〉김용직(편)《사료로 본 한국의 정치와 외교: 1945∼1979》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2005
서울대학교 미국학연구소〈韓美關係 1882∼1982〉《미국학 모노그래프》(제8집)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2
역사스페셜〈월남파병, 박정희의 승부수였다〉KBS 1TV, 2003.5.24 방송
전재성〈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와 베트남 파병을 둘러싼 미국의 대한(對韓)외교정책〉《한국정치외교사논총》26집 1호, 2004
정수용〈한국의 베트남전 파병과 한미동맹체제의 변화〉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논문, 2001
한홍구〈베트남 파병과 병영국가의 길〉이병천(편)《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창작과 비평, 2003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2. 0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