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

분야별 검색

  • Home
  • 기록물 열람
  • 통합검색
  • 분야별 검색

보건

천연두 관리 사업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종두규칙내부령」(제8호, 1895년)
「종두소세칙」(1898년)

배경

이종인의 시종통편 발간 이후 인두법이 응용되고 있었으나 개항 이후 일본으로부터 우두법이 도입되었고 대한제국 시대에 이르러 천연두 예방 목적으로 중앙과 지방을 아우르는 전국적인 우두접종액의 배양, 종두의 양성 및 종두 시술 사업이 실시되었다.

내용

1. 조선
가. 전라도 우두국 운영(1882년)
조선 최초 정부 우두사업


나. 충청도 우두국 운영(1883년)
비용 2900냥
충청감영에 우두국 설치
경상도 의원을 통한 교육


다. 종두의사 양성
1867년 6월 종두의 양성소 설치
1897년 첫 졸업생 배출


2. 대한제국
가. 한성 종두사업

1895년 우두종계소를 두어 의사 2명으로 하여금 접종액을 만들게 하고 서울 전 지역을 5서로 나누어 각 곳에 종두소 1곳씩을 두어 종두의사 1인으로 하여금 우두를 시술하도록 하였다. 매일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 사이에 진료를 보았으며 자신들의 실적과 소요 경비를 매달 말 내부에 보고하였다.


1900.6 「한성종두사관제」공포
1900.9 「한성종두사 세칙」


한성종두사는 한성 5서 내의 종두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내부대신 직속기관으로 활동하였다. 한성종두사의 사장은 위생국장이 겸직하였으며 사장 휘하에 의사 5인, 기수 2인, 서기 1인이 배속되었다. 의사는 종두사무를, 기수는 두묘제, 사무를, 서기는 문첩보관과 재용회계를 맡았다.


나. 지방 종두 사업

1899 「각지방종두세칙」

한성의 국가 부담 원칙과 달리 접종자 부담을 원칙으로 하였다. 각 도에 접종액을 생산할 종계사가 설치되고 내부에서 이곳에 종두위원을 파견하여 도 차원의 종두사업을 책임지도록 하였다. 이전과 달리 접종 수입을 모두 국가에서 수납하여 실적에 따라 일정 급료를 종두의사에게 지불했다는 점에서 국가 운영의 형태를 띄었다. 한 도에 2명식 전국에 26명의 종두 위원이 정식으로 발령되었다. 각 도 관찰사는 내부 훈령에 따라 종계소를 설치하고「종두세칙」을 각 군에 전칙하는 한편 종두 인허원을 선발하여 각 군에 파견하엿다. 내부에서는 지방 13도의 종두 사무를 지원하기 위해서 우편제도를 이용하여 두묘를 보냈으며 종두제구 몇 천벌과 종두증서 50원 분을 각 도에 내려보냈다.


다. 종두사업의 단일조직 통일

1905「광제원종두지소세칙」

한성종두사가 광제원 종두소 편입되었고 지방 종두 행정이 광제원으로 통합되어 지방의 종두소는 광제원종두지소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한성
1899 동서 1,224명, 서서 1,150명, 남서 1254명, 북서 457명, 중서 604명


전국
1900 46,027명
1901 함북·종두 시술자 3,000명(전년도 대비 2.5배증가)
1902 9월 현재 경북 접종자 4,408명


한성순보 : 정부기관지 통해 우두법의 필요성 홍보

참고자료

신동원,《한국근대보건의료사》한울아카데미, 1997

집필자
한동운(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