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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한국노동연구원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한국노동연구원은 노동관계 문제를 다루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1988년 5월 9일 재단법인으로 설립된 후, 같은 해 8월 25일에 개원하였다. 그 해 12월 31일에「한국노동연구원법」이 제정·공포됨에 따라 1989년 1월 9일 재단법인 한국노동연구원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한국노동연구원이 승계하여 2월 21일 법인으로 새롭게 발족하였으며, 노동정책 전문연구기관으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해왔고 양적으로 크게 성장해왔다.

배경

노동연구원은 ‘출신 배경’부터 한국 사회의 심각한 노사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십 년간 억눌렸던 노동계의 욕구가 1987년 6·29선언 이후 터져 나오면서 정부 일각에서 노동전문 연구기관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울산대 총장을 역임했던 고 배무기 교수가 노동연구원의 출범 준비를 맡았다. 88서울올림픽 직전인 8월 5일 연구원이 정식 출범했다. 초대원장을 맡은 배 원장은 연구원을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춘 기관으로 키워내는 과정에서 정치권 및 정부와 마찰을 빚었고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990년에 대학으로 복귀하기도 했다. 노동연구원은 노동정책에 대한 수많은 제언을 통해 정부의 노동정책 개발과 노사관계 개선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왔다. 출범 당시부터 노동연구원에 몸 담아왔던 이원덕 원장은 “당시는 박정희 정권 이후 자리를 굳혔던 ‘개발연대 식’ 노사관계가 깨어지면서 노동계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15년이 지나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한국사회는 한국적 노사관계의 모델을 만드는 ‘역사적 과도기’에서 있으며 노동연구원이 그 중심에 서 있다”고 자부했다. 연구원의 대부분은 노사정위원회를 포함, 정부의 각종 위원회의 위원으로 ‘겹치기 출연’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노동계, 기업과 대화하며 ‘발로 뛰는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5, 6대 원장을 역임한이 원장은 국립대인 충남대 교수직을 버리고 평 연구위원으로 이 연구소에 합류한 노동연구원의 ‘산 역사’이자 노동경제 분야의 권위자다.외환위기 이후 ‘실업대책모니터링 센터 소장’을 맡았던 정인수 부원장은 청년실업 문제의 최고 전문가이다.

내용

한국노동연구원의 설립목적은 노동관계 제 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분석함으로써 합리적인 노동정책 개발과 노동문제에 관한 국민 일반의 인식 제고에 이바지하는 데 있다.이를 위해①노동시장 및 고용정책 연구②노사관계 및 인적자원 관리 연구③노동법·제도개선 연구 ④노동복지 및 삶의 질 연구⑤노동동향 분석⑥특수 과제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또 특별사업으로 한국 노사관계 혁신 사업, 국제 노동정보 서비스 사업, 공공 부문 노사관계 연구 및 안정화 사업을 전개하며, 노동동향 분석, 노사관계 고위지도자 과정 운영, 학술·정보교류 및 토론회 등 개최, 해외노동 관련자료 번역·발간, 노동정책연구회 운영 등 연구사업도 수행한다. 1995년 12월에 고용보험연구센터를, 1998년 10월에 실업대책모니터링센터(현 노동시장평가센터)를, 1999년 2월에 산업복지연구센터를, 2005년 1월 3일에 데이터센터를, 2005년 2월 25일에는 임금직무혁신센터를 개소하였다. 2001년 10월 28일에는 부설 실업대책모니터링센터를 고용보험연구센터에 통합하였다. 또한 한국노동연구원은 2004년 3월에 사람중심조직구현을 위한 정부지원 컨설팅사업과 연구사업의 수행을 목적으로 부설기관으로 ‘뉴패러다임센터'를 개소하였다.

참고자료

한국노동연구원 홈페이지(httP://www.kli.re.kr)

집필자
유성재(중앙대학교 법학과 교수)
최초 주제 수정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