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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원자력발전소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원자력법」 (제3장, 1958)
배경

원자력발전소 건설 방안이 구체화된 것은 1962년 11월 원자력원에 원자력발전대책위원회(훈련 제4호)가 생기면서부터였다. 1963년 10월에는 IAEA의 원자력발전예비조사단이 내한해서 1970년대가 되면 150MWe 정도의 발전소를 건설하게 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1965년 12월에는 정부 내에 〈원자력발전계획 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원자력발전계획을 추진케 되었다. 원자력원은 1966년 5월 원자력발전 기술조사단을 파견하였고, 같은 해에 〈원자력발전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결과 1967년 12월에 원자력발전 타당성조사보고서가 제출되었다. 1968년 2월에는 〈원자력발전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고,원자력발전소의 건설·운전 담당기관은 한국전력으로 정해졌다. 


1968년 6월 한국의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미국의 General Electric, Combustion Engineering, Westinghouse, 영국의 The British Nuclear Export Executive로부터 예비견적서가 제출되었다. 1969년 1월에 이 가운데 웨스팅하우스의 가압경수형로를 쓰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부지검사와 타당성검사 등을 거친 다음 1971년 3월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고리에서 기공식을 가졌고, 1978년 7월 20일 고리 1호 원자력발전소가 준공되었다. 그 후 20여년의 기간 동안 고리를 포함한 4곳의 지역에 15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었으며, 원자력발전소의 추가 건설은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다.

내용

1. 고리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는 가압경수로형이며 일괄도급방식(Turn-Key)으로 도입되었다. 건설공사의 주계약자인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전반적인 건설책임과 원자로계통 및 핵증기발생설비, 그리고 초기핵연료의 공급책임을 담당하였고, 영국의 EEW는 터빈 발전기 등 2차계통의 설비공급 및 1, 2차 설비현장공사와 그 밖의 토건공사를 맡았다. 또한 국내업체로는 원자로계통시공을 현대건설(주)이, 그리고 터빈 발전기 계통시공은 동아건설(주)이, 비파괴검사를 유양원자력(주)이 각각 담당하였으며, 한전은 전체공사의 감리를 담당 시행하였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7월 준공되었다. 고리 2호기도 가압경수로형이며 건설 도중 여러 문제점들이 발견됨으로써 목표였던 1979년 9월을 넘겨 1983년 7월에 준공되었다. 


고리 3, 4호기는 가압경수로형이며, 일괄도급방식이 아닌 분할발주방식을 통해 건설되었다. 1978년 2월에 부지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같은 해 4월 웨스팅하우스와 1차 계통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5월에는 GEC와 2차 계통 공급계약을, 벡텔사와는 기술용역 계약을 맺었다. 1978년 기공식을 가졌고, 3호기는 1985년 9월에, 4호기는 1986년 4월에 상업 운전을 개시했다. 한국전력기술(주)이 기본설계 분야에 참여한 것을 필두로 한국중공업(주)과 효성중공업(주) 등이 기자재 국산화에 참여했으며 시공은 현대건설(주)이 맡아 95%의 시공 국산화율을 달성했다.



2. 월성 원자력발전소
월성 1호기는 가압중수로형으로서, 1973년 11월 건설계획이 확정된 후 1975년 1월 캐나다 원자력공사(AECL)와 정식 계약했다. 월성 1호기는 일괄도급방식(Turn-key)으로 추진되었으며, 캐나다원자력공사가 원자로의 설계, 구매, 설치, 시운전, 품질보증, 운전원 훈련, 초기 노심용 연료 및 중수로 공급 등 전체를 책임지고, 영국의 파슨스사 및 GEC사가 터빈 발전기와 급수가열기 및 변전설비의 공급과 설치 감독을 맡았다. 1977년 6월 기공식을 가졌고, 1983년 4월 22일 상업운전을 개시했다. 


월성 2호기는 가압중수로형으로 1997년 7월 상업운전을 개시했다. CANDU-600과 동일한 형식으로 추진되었으며 월성1호기와 G-2(캐나다), Pt. Lepreau(캐나다) 및 Embalse(아르헨티나) 발전소 등을 참조 발전소로 하여 설계되었다. 월성 1호기의 설계시점 이후 개선된 인·허가 요건과 기술기준을 설계에 반영했으며 그 동안의 운전경험과 기술개발에 따른 설계개선 필요사항 등을 반영하였다. 기존의 월성 1호기의 국산화율이 14%였던 것이 비해, 월성 2호기는 국산화율을 58%로 높였다. 


월성 3, 4호기는 가압중수로형으로, 3호기는 1998년 7월에, 4호기는 1999년 10월에 각각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CANDU-600형과 동일한 형식으로 추진되었다. 월성 3, 4호기의 설계개념 및 기술기준은 월성 2호기의 복제설계를 원칙으로 하되 공용설비를 추가했으며 월성 2호기와 동일한 기술기준을 적용했다. 또한 중수로 핵심 분야의 기술전수 협정으로 후속기부터는 국내 주도로 중수로를 건설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다.



3. 영광 원자력발전소
발전소 사고의 영향으로 안전기준을 강화했다. 분할발주방식으로 건설되어, 설계부문은 44%, 기기 제작부문은 35%까지 국산화를 달성했다. 


영광 3, 4호기는 가압경수로형으로 한전 주도로 건설한 한국표준형 원자력발전소의 기본모델이다. 1995년 3월과 1996년 1월에 각각 상업운전을 개시했다. 계약방식을 국내업체 주도로 전환하고 일부 핵심 분야에 대해서만 외국 업체가 주계약자의 하도급 업체로 참여토록 했다. 노형은 미국 ABB-CE사의 System80을 기준모델로 했다. 


영광 5, 6호기는 가압경수로형으로 한국표준형 원전 2기이다. 5호기는 2002년 5월에, 6호기는 2002년 12월에 상업운전을 개시하였다.



4. 울진 원자력발전소
울진 1, 2호기는 가압경수로형으로, 1982년 10월에 기공식을, 1990년 2월에 준공식을 가졌다. 핵증기공급계통은 프랑스의 프라마톰사가 공급했고, 터빈 발전기계통은 프랑스의 알스톰사가 공급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프랑스와 원전기술교류를 하게 되어 국내 원전의 표준화에 기여했다. 국산화율이 영광 1, 2호기의 34.9%에서 40.15%로 대폭 향상되었다.


울진 3, 4호기는 최초의 한국표준형 원전으로서 가압경수로형이다. 1998년 8월에 3호기가, 1999년 12월에 4호기가 상업운전을 개시했다. 종합설계와 원자로계통 설계는 한국전력기술(주)이, 원자로설비 및 터빈발전기 공급은 한국중공업(주)이, 원전연료의 공급은 한국원전연료(주)가 맡았으며 보조기기는 국내외 업체에서 구매했고 토건공사는 동아건설산업(주), 기전공사는 한국중공업(주)이 각각 수행했다. 기술자립이 진행 중인 일부 분야는 외국 전문업체가 기술지원 형태로 참여했는데, 설계업무분야 중 종합설계에는 미국의 서전트 앤드 런디(Sargent & Lundy)사, 원자로계통 설계분야에는 미국의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ombustion Engineering)사가 참여했다. 설비공급분야는 원자로설비 공급분야에 미국 ABB-CE사, 터빈발전기 공급분야에 미국 GE사가 참여했다. 


울진 5, 6호기는 한국표준형 원전인 울진 3, 4호기와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발전소이다. 5호기는 2004년 7월에, 6호기는 2005년 4월에 공사를 마치고 가동 중이다.

참고자료

한국원자력연구소,《한국원자력 20년사》한국원자력연구소, 1979
한국전력공사,《한국전기백년사》한국전력공사, 1989
한국전력공사,《한국전력사십년사》한국전력공사, 2001
한국수력원자력(http://www.khnp.co.kr/)

집필자
문만용(서울대학교 강사·과학사)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